침수차로 ‘빼곡’ 집중호우에 침수 피해를 본 차량이 늘어나고 있다. 11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마련된 삼성화재, KB손해보험 임시 보상서비스센터에 피해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침수차로 ‘빼곡’ 집중호우에 침수 피해를 본 차량이 늘어나고 있다. 11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마련된 삼성화재, KB손해보험 임시 보상서비스센터에 피해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폭우 피해가 점차 수습되는 가운데 긴박한 순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해를 키운 행정기관들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한 방수문을 열어 놓은 채 퇴근했고, 경찰청은 교통통제 정보를 내비게이션업체에 뒤늦게 공유해 폭우 속 혼선을 야기했다. 행정기관들의 ‘뒷북 대처’에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방수문 열어놓고 퇴근

11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일 폭우가 쏟아질 때 경기 안양시 동안구 부근 안양천 방수문이 그대로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급격히 불어난 안양천 물이 양옆으로 열려 있던 방수문을 통과해 비산동 안양동 호계동으로 쏟아졌다. 도로는 물론 인근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의 침수로 이어졌다.

호계동의 한 아파트 주민 조모씨는 “밤까지 방수문이 열린 상태로 있어서 막대한 피해를 봤다”며 “방수문은 다음날까지 그대로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안양시청 공무원들은 9일 출근한 이후에야 방수문을 닫았다.

안양천에는 18개 방수문이 있다. 방수문 관리는 구청이 총괄하며 집중호우와 같은 상황 시 방수문 개폐 작업은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하도록 돼 있다. 이날 안양시청 관계자는 “방수문 개폐 여부를 시에서 확인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번 폭우 당시 방수문을 늦게 닫은 것은 맞다”며 “뒤늦게 시에서 닫은 곳도 있고, 오후 10시에 주민들이 직접 닫았다는 민원도 들어왔다”고 말했다.

민간에선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안양천 인근 호계동의 한 오피스텔은 이날까지 침수로 인터넷과 TV가 끊기고 엘리베이터가 정지된 상태다.

주민들은 “몸이 불편한 노약자까지 계단을 이용하고 있다”며 불편을 토로했다. 비산동의 한 아파트는 안양천 바로 앞에 있어 단지 내 차량 100대 이상이 침수되고 변압기가 고장 나 아파트 전체가 정전되기도 했다.

경찰, 교통정보 늑장 제공

8일 저녁 실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내비게이션으로 시민들은 도로에서 혼선을 겪기도 했다. 도심 침수지역을 공유받지 못한 내비게이션이 잘못된 길을 안내한 것이다.

8일부터 이날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에는 ‘내비 앱이 침수 도로를 정상 통과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는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9일 퇴근길에 내비 덕에 침수차가 될 뻔했다’ ‘10일 출근길 집 근처 지하도가 침수됐는데, 앱이 거길 지나가게 안내했다’ ‘눈으로 물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회했다’는 식이다.

경찰청의 늑장 대응이 내비게이션 안내 오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내비게이션업체에 교통통제 정보를 제공하는 건 경찰청 도시교통정보센터다. 내비게이션 앱은 그동안 쌓인 시간별 차량 통행량 데이터와 경찰청 통제 정보를 조합해 길을 우회해야 할지 알려주는 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도심 내 동시다발로 통제구역이 발생하면서 경찰도 실시간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맵 모빌리티 관계자는 “이번 폭우엔 특히 실시간 교통량이 적어 데이터가 더 부정확했던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늑장 재난문자도 현장의 피해를 키웠다. 관악구청은 8일 오후 9시20분이 넘어서야 ‘도림천 범람’과 ‘봉천동 산사태’ 관련 재난안전 문자를 발송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저지대를 중심으로 침수된 이후였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재난 안전문자는 신중하게 판단해서 보내기 때문에 발송이 늦을 가능성이 있다”며 “안내 문자는 풍수해 대책 매뉴얼에 따라 하천 수위가 80%를 넘었을 때 발송됐다”고 해명했다.

서초구에서 김밥집을 하는 정모씨(56)는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조심하라는 문자를 구청에서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이에 서초구청 관계자는 “호우경보 관련 문자는 서울시와 행안부에서만 보내고 구 차원에선 양재천 범람 안내 문자만 발송했다”고 했다.

장강호/김대훈/선한결/구민기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