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이 회의에서 공공기관 개혁의 기준이 되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이 회의에서 공공기관 개혁의 기준이 되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인 공공기관 개혁 작업을 시작했다.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도 채 지나기 전에 공공기관 개혁의 큰 틀인 혁신 가이드라인을 완성하면서다. 정부 관계자는 “더 이상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및 비효율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판단해 개혁 작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년간 공공기관의 재무 상태는 급격하게 부실해졌고 규모는 과도하게 비대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 번째로 주재한 국무회의 주제로 공공기관 개혁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공공기관 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방만하게 운영돼온 부분은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넘치는 간부 줄인다

기획재정부가 29일 공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기능조정 △조직·인력 효율화 △예산 효율화 △자산 정비 △복리후생 점검·조정 등 다섯 개 분야로 이뤄졌다. 기능조정의 핵심은 민간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겹치는 기능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다. 고유 목적사업 외 영역 확장 또는 수익 증대를 위해 확대된 기능도 폐지한다. 공공기관끼리 비슷한 업무를 할 경우에도 이를 통폐합한다. 비대해진 공공기관의 덩치를 줄이는 게 개혁의 첫 단추라는 판단에서다. 또 공공기관이 정권이 원하는 사업을 ‘총대’를 메고 수행하는 관행도 막겠다는 취지다.

공공기관 '방만' 수술대에…"비핵심자산 팔고 간부 대폭 줄여라"
기능조정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대신 현원을 초과한 정원을 감축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공공기관 정원은 44만8276명으로 현원(41만4610명) 대비 3만3666명 많다. 공공기관 특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원칙적으로는 정원이 약 3만 명 줄어야 한다는 의미다.

과도한 간부 비율도 줄인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37.9%), 한국마사회(33.9%) 등 일부 공공기관은 간부 비율이 30%를 넘어섰다. 지방조직과 해외조직은 사업 성과와 서비스 수요를 입증하지 못하면 축소해야 한다.

예산 효율화 작업도 시작한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원과 직원의 보수를 적정한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사실상 삭감 조치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존 호봉제 대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도 가이드라인에 담겼다.

업무추진비를 포함한 경상경비 절감 조치도 이뤄진다. 올 하반기 업무추진비와 경상경비를 10% 이상 줄이라는 게 정부 지침이다. 내년 경상경비는 전년 대비 3%, 업무추진비는 전년 대비 10% 삭감한다.

○업무와 상관없는 주식 지분도 매각

정부는 공공기관에 본연의 기능과 상관없는 자산을 다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불필요한 토지나 건물, 콘도회원권이나 골프회원권처럼 직원 복리후생을 위한 자산 등이 대표적이다. 핵심 업무와 무관한 회사 지분도 모두 매각하라는 게 정부 원칙이다.

공공기관의 1인당 업무 면적과 기관장 및 임원 사무실 면적도 집중 관리 대상이다. 기관장 사무실은 차관급 기준(99㎡), 임원 사무실은 국가공무원 1급 기준(50㎡)에 맞춰야 한다. 기재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임원 사무실 기준을 위반한 공공기관은 106곳에 달했다. 공공기관 열 곳 중 세 곳이 원칙을 어겼다는 의미다. 지나친 복리후생 제도도 정비한다. 과도한 사내대출 관행과 의료비 지원 제도 등이다.

공공기관 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공공기관 노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계는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기 전부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 체계 개편과 경상경비 절감 등은 공공기관 직원의 반발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이 민영화 및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이나 민영화는 추진할 계획이 없다”며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이번 가이드라인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