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투자 트렌드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역대급 가뭄이 이어지며 물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으로 인식되던 물이지만 지구 온도 상승,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정작 사용할 수 있는 진짜 물이 귀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확산될수록 물이 투자처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메말라가는 지구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역대 최악으로 알려진 1924년 이후 가장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기온과 건조한 날씨, 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수자원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민들에게 물 사용량을 15% 줄일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프리카 케냐에선 지난 2년간 몰아닥친 가뭄으로 210만 명이 기아에 시달렸다. 올해 최악의 가뭄을 경험한 대만 정부는 6년 만에 물 부족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특히 중부 타이중의 산업단지에서는 물 공급을 15% 줄이면서 TSMC 등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곳곳에선 위기감을 높이는 연구 자료를 내놓고 있다. SK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수자원 수요는 지난 100년간 600%나 늘었다. 박기현 SK증권 연구원은 ‘다시 한번 물에 주목할 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해 찾아올 변화 중 가장 시급하면서 동시에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항은 바로 수자원의 고갈”이라고 진단했다. 유안타증권 기업분석팀은 지난달(10월) 보고서를 통해 “오는 2050년 물의 수요가 가용 수자원의 20~30%를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하수도 정비, 폐수 처리 및 재활용, 해수담수화와 같이 안정적 물 공급을 위한 물 관련 산업 전반에 투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은 이유다. 유엔 보고서에서는 2030년경 물 수요량이 공급량의 40%를 초과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지구가 말라간다…‘블루골드’ 물에 투자하는 법


물이 대접받는 ‘블루골드’ 시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는 이 같은 현상에 맞춰 자산운용사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물값’이 높아질수록 물과 관련한 투자상품이 각광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조사 분석 기관 글로벌워터 인텔리전스(GWI)에 따르면 세계 물 산업 시장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919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시장은 오는 2024년까지 연평균 3.4%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기준 약 5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반도체 시장 대비 2배에 달하는 규모다.

2000년대 호주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당시 관련 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삼성글로벌펀드 워터(Water)펀드가 대표적이다. 물과 관련한 기업, 즉 수자원 개발과 공급·인프라·정수·오염수 처리 등에 투자하는 펀드다. 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물 부족에 대한 심각성이 크게 확산되지 않은 영향이다. 실제로 국내 운용사들이 유사한 펀드를 출시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것과 달리 수익률은 양호하다. 삼성글로벌펀드 워터펀드는 최근 3년간 62.67%의 수익을 냈다. 국내 전체 ESG펀드(42개)와 녹색성장펀드(29개)의 3년 수익률 49.62%, 51.16%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은 지난 8월 ‘지속 가능 워터·웨이스트펀드’를 국내에 새롭게 선보였다. 세계 수자원 및 폐기물 관련 기업 30여 곳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를 국내 재간접 펀드 형태로 출시한 상품이다. 피델리티자산운용 측은 “수자원은 생활을 유지하고 반도체 등 각종 산업을 지속하는 데 필수적 요소로, 도시화에 따라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수도 공급업체인 아메리칸 워터 웍스 컴퍼니를 비롯해 수처리 솔루션업체 에보쿠아 워터 테크놀로지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지구가 말라간다…‘블루골드’ 물에 투자하는 법


지구가 말라간다…‘블루골드’ 물에 투자하는 법



물도 ETF가 대세

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증가하는 추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해외 ETF 브랜드 글로벌엑스는 지난 4월 ‘글로벌엑스 클린워터 ETF(AQWA)’를 나스닥에 상장했다. 수자원 관련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ETF로, 지난 6개월간 9.72%(10월 20일 기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 상승률(9.18%)보다 다소 높은 수치다.

가장 대표적 물 관련 ETF는 인베스코 수자원 ETF(PHO)가 있다. 안전한 수자원 공급을 위한 관리 솔루션, 소프트웨어, 인프라 사업 등에 분산투자하는 ETF다. 미국에 상장된 물 ETF 중에서는 거래량이 가장 많고 운용자산이 크다. 올해 수익률은 22% 수준이다. 인베스코 S&P 글로벌워터 인덱스 ETF(CGW)의 경우 S&P 글로벌 워터지수를 추종하는 ETF로 2007년 상장했다. 주요 선진국에 자리한 물과 관련한 유틸리티, 인프라, 장비, 기계, 소재 기업에 투자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수자원 관련 투자가 이뤄지면서 관련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수자원 인프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의 직접적 수혜 테마”라며 “미국의 초당적 인프라 투자안은 특히 노후 시설 재건·보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 중 안전한 식수 공급 및 상하수도 교체 등이 우선순위에 해당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미국 인프라 예산안에 따르면 물 산업 관련 예산으로 식수와 관련해 550억 달러, 미 서부 물 인프라 50억 달러, 지역사회 영속성 및 기후변화 대비 470억 달러 등이 포함됐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