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서울의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스1
7월 15일 서울의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스1
금융당국이 은행권 대출 규제 강화로 2금융권에 대출 수요가 몰리자, 이들에 대한 추가 대출 규제를 검토한다. 높아진 은행 대출 문턱에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밀려드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인데, 또다시 대출길을 좁히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출 규제 강화로 일어난 부작용을 또 다른 규제로 막아서는 조치가 저신용·저소득자를 아예 규제권 밖으로 밀어버리는 제2의 풍선효과를 이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 조치를 시행하면서 대출 난민 증가 우려가 커지고 있단 점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단 점 등을 미루어볼 때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풍선효과' 2금융권 대출 급증에…금융당국 '추가 규제' 엄포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호금융과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사, 보험사 등 2금융권 가계대출은 1년 전보다 21조7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4조2000억원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9년 상반기에도 2금융권 가계대출은 전년 대비 3조4000억원 감소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은행권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한 탓이 크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비은행권으로 실수요자들이 대거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실제로 은행권의 경우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이 1년 전보다 41조6000억원 증가했으나, 이는 전년도 증가액인 40조7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이어 2금융권에 대해서도 대출 규제 강화 칼날을 휘두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5일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올해 중 가계부채 증가율을 5∼6%대에서 차질 없이 관리할 수 있도록 보다 촘촘한 관리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규제 차익을 이용한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된다고 판단할 경우 은행권·비은행권 간 규제 차익을 조기에 해소해 나가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이 2금융권에 대한 대출 규제 정도를 예정보다 빠른 시기에 은행권 수준으로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금융권역별 차이를 두고 있는 2금융권에 대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추가 규제 조치가 시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는 이달 은행권에서 시행된 DSR 40% 규제의 전 금융권 적용 시기를 내년 7월에서 올해 내로 앞당기는 조치가 거론된다. 현재는 비은행권의 경우 저신용·저소득자의 자금 사정을 감안해 DSR 60%를 적용 중이다. 여기에 내년 7월까지 유예된 카드론(장기카드대출)의 DSR 규제 적용 시기가 당겨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불법 사금융 확대' 제2의 부작용 우려…시기 부적절 지적도

규제로 발생한 풍선효과를 또 다른 규제로 막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2의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이유다. 비교적 대출을 받기 수월했던 2금융권까지 대출 문턱을 높이면,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저소득자들은 아예 제도권 밖으로 떠밀리는 결과를 이끌 수 있다는 지적이다.
6월 14일 서울의 한 저축은행 창구 모습. 사진=한경DB
6월 14일 서울의 한 저축은행 창구 모습. 사진=한경DB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상 2금융권까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소득이 크게 줄었거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서민들이 돈을 빌리는 방법은 불법 사금융뿐"이라며 "저소득 또는 저신용자들이 사채시장으로 넘어갈 경우, 통계도 잡히지 않는 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대출의 질이 끊임없이 나빠질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결국 정책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개인의 손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라며 "더 밀려날 곳이 없는 곳으로 서민들을 반복해서 밀어내는 정책이 가져올 풍선효과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시점이 2금융권을 겨냥한 대출 규제 강화를 나서는 시기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달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되면서 제도권 저신용자들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금융당국은 이번 최고금리 인하 조치로 기존 신용대출 이용자 약 31만명이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3~4년에 걸쳐 민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고, 이중 약 3만9000명은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만약 금융당국이 추가적인 대출 규제 강화 조치를 내릴 경우, 불법 사금융 예상 이용 차주의 규모는 확대될 여지가 크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오는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기준금리 인상 시기에 고금리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경우, 이자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졌던 지난해 불법 사금용 이용자가 평균 연 401%의 이자율을 감당했단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살인적인 이자 부담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단 의미다.
서울 명동 거리에 붙어있는 불법 사금융 전단지의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명동 거리에 붙어있는 불법 사금융 전단지의 모습. 사진=한경DB
한은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는 "최근 시행된 법정 최고금리 인하 영향으로 이미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이 사채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매우 큰 상태"라며 "불법 사금융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기준금리 인상 시기까지 겹쳐있기에 추가적인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서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강 명예교수는 "중산층이 아닌 서민들의 대출 부담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만큼, 무조건적 대출 옥죄기로 리스크를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점진적으로 유동성을 줄여나가는 대책을 마련해 가계대출 관련 위험성을 완화하는 방향을 잡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기준금리 인상은 모든 차주의 부담 증가로 연결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금융권보다 2금융권이, 이보다 제도권 밖 시장에서의 금리 상승 폭이 빠르게 커진다는 점"이라며 "현재 국내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것이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나, 은행권에 이어 전 금융권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안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가계대출이 크게 증가한 개별 금융사에 대출 조절 시그널을 전달하고 있으나, 이 같은 조치에도 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계속해서 증가할 경우 대출 규제 조치를 고려해보겠단 것"이라며 "현재 추가 규제 조치가 확정된 상황이 아니며, 관련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이에 따른 부작용과 풍선효과를 충분히 감안한 세부적인 방안을 세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