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재산의 10%는 미국 국채에, 90%는 뱅가드의 S&P500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해달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2019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역사상 최고의 투자가로 평가받는 버핏의 이 말은 ETF가 그만큼 믿을 만한 투자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공모, 사모펀드가 모두 위기에 처한 한국 시장에서는 강력한 투자수단이 되고 있다.

이미 고액자산가들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3개 증권사(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에 10억원 이상을 맡긴 고액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보유한 ETF는 7630억원어치에 달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로 쏟아져 들어오기 전인 2019년 말(3626억원)보다 110.42% 급증했다. 이들이 2월 말까지 내놓은 매수 주문은 9조7371억원어치에 달했다. 2018년(5조5991억원) 매수량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수익률 높고, 고를 것 많고, 투명하고…"ETF 안 할 이유가 없다"

단타 거래에서 투자상품으로

고액자산가들의 ETF 투자는 단기 차익형 상품에서 테마형, 자산배분형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까지 이들이 가장 공격적으로 매수한 ETF는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였다. 지난해 국내 ETF 매수 상위 5개 종목 모두를 인버스와 레버리지 상품이 차지했다. 이들 ETF는 주로 짧은 시간 사고팔면서 증시의 등락에 베팅하거나, 다른 성격을 지닌 상품 두 개에 동시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차익거래에 활용된다.

올 들어서는 변화가 포착된다. 특정 투자 테마에 속한 기업들에 분산 투자하는 테마형 ETF와 업종 ETF가 상위권에 대거 진입했다. 단기투자형 상품 일색이던 포트폴리오에 장기투자형 상품이 진입하면서 ETF 보유 잔액도 급증했다. 국내 상품 가운데서는 2차전지 밸류체인에 속한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타이거KRX 2차전지 K-뉴딜’ ETF가 4위를 차지했다. 해외 ETF 투자자는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에너지셀렉트 섹터 SDPR’(티커명 XLE)에 세 번째로 많은 매수주문을 넣었다. 올 들어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산업이 수혜 업종으로 부각됐고, XLE 주가도 연초 대비 32.53% 올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 화제를 몰고 온 캐시 우드가 이끄는 아크인베스트먼트의 ETF도 부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아크인베스트먼트는 단순히 지수를 추종하기보다 펀드매니저가 직접 종목을 거래하는 ‘액티브 ETF’를 판매한다. 아크ETF 가운데 최대 규모인 ‘ARK 이노베이션’(ARKK)은 자산가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해외 ETF 4위에 올랐다. ARKK는 지난해 152%의 수익을 올리며 레버리지형 상품을 제외한 미국 내 모든 ETF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성적을 냈다.

ETF의 장점? 쉬운데 수익률도 뛰어나

ETF가 자산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저렴한 수수료와 투명성 때문이다. 과거 간접투자상품의 주류를 차지했던 액티브 펀드가 시장 지수만도 못한 성과를 올리면서 자산가들이 ETF로 돌아섰다는 설명이다. 펀드평가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541개 액티브 주식형펀드가 지난 1년 동안 올린 수익률은 평균 82.9%였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84.7%)을 밑돈다. 연 0.3%대인 ETF의 평균 보수와 대비되는 액티브 펀드의 높은 수수료를 고려하면 ETF의 매력은 더욱 커진다.

투명성도 ETF의 장점이다. ETF는 사전 설정된 원칙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이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추적하며 펀드가격에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액티브 펀드 투자자가 환매 주문을 내도 해당 시점의 펀드 종목 구성은커녕 환매 가격조차 바로 알지 못하는 것에 비해 투명성 측면에서 투자자의 선호도가 높다는 평가다.

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는 “ETF는 시장 전체의 수익률을 단순히 따라가는 것을 넘어, 개별 투자자가 짜기 힘든 투자 전략과 테마를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모펀드가 쇠락하고 사모펀드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차별화된 ETF 전략을 통해 투자자를 공략하는 것이 자산운용업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