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은행들이 홍콩 국가보안법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제재 사이에서 '정치적 축구공' 신세가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지난 1일 공식 발효된 홍콩보안법은 기업들에게 광범위한 부담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으로 29조가 꼽힌다. 보안법 29조는 중국이나 홍콩에 제재, 봉쇄 등 적대적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 기밀이나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이나 외국 조직, 개인 등에 제공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지난 2일에는 미국 상원이 홍콩보안법에 관여하는 중국·홍콩 관료들과 거래하는 은행들에 벌금을 물리거나 사업 허가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이른바 홍콩자치법)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거치면 시행된다. 법안에는 홍콩 자치권 침해를 돕는 단체 및 그들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도 담겼다.

워싱턴의 로펌 매이어 브라운의 테이머 솔리먼 변호사는 "은행들이 미·중의 갈등 안에서 정치적 축구공 신세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고객사들에게 홍콩보안법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 미국의 은행들은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영국계임에도 홍콩에서 연간 이익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이는 HSBC는 홍콩보안법을 지지하는 공개 성명을 냈다가 서방 국가들로부터 집중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글로벌 은행들은 특히 미·중의 규제가 충돌하는 부분에서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 홍콩자치법을 실행하면 국무부는 제재 대상 중국 관료를 추려내고, 이 관료들과 거래하는 은행들은 관련 정보를 미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위 관료의 정보를 제공하면 이는 홍콩보안법 29조의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에 제공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 때문에 미국 제재에 해당될 수 있는 고객들을 추려내기 시작했으며, 해당 고객들과 위약금 없이 거래 관계를 해지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은행들은 임시방편으로 홍콩 외 지역 지점에서 홍콩 관련 금융업무를 보도록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홍콩보안법 38조가 외국인이 홍콩 밖에서 저지른 보안법 위반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실효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자치법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으나,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과 하원에서 만장일치 지지를 보낸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가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재 대상을 최고위 관료 몇 명으로만 제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도 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하다가 글로벌 기업과 은행들이 떠나가 홍콩이 글로벌 금융허브 지위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해외에까지 관할권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