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체 H사는 한국 본사를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치솟는 인건비와 ‘규제 쓰나미’를 피하기 위해서다. 모로코 국왕이 직접 나서 세제 혜택은 물론 공장 부지 제공까지 약속한 상태다. 전력기기를 생산하는 N사는 국내 사업을 줄이고, 싱가포르에 글로벌사업본부를 세워 해외 사업을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유는 H사와 비슷하다. 알루미늄 합금 제품 등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S사 대표는 공장 문을 닫고 빌딩을 매입해 임대업을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그는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고 했다.

"땅에 떨어진 기업 의욕…정말 이대로 둘 건가"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의욕을 잃은 기업인들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건 천형(天刑)을 받는 것처럼 힘들다”는 게 기업인들의 토로다. 한국경제신문이 25일 국내 300대 기업(매출 기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현실은 그대로 확인됐다. 응답 기업(150개사)의 64.2%가 ‘쏟아지는 규제 법안’과 ‘친노조정책’ 때문에 기업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년 넘게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 준비 안 된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등 친노조정책이 쉴 새 없이 쏟아진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탈원전 등 ‘일방통행’ 정책과 툭하면 공장을 멈추게 하는 산업안전법 등 ‘규제 폭탄’도 기업인의 사기를 꺾고 있다.

올해는 설상가상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경영권을 옥죄는 상법 및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25%인 법인세 최고 세율도 더 끌어올릴 태세다. “기업은 좀 눌러도 된다는 낡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경제는 버려진 자식이 됐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는 호소가 이어져도 요지부동이다. 기업인들 사이에서 “그동안 생존을 위해 발버둥이라도 쳤지만, 이젠 자포자기 심정”이라는 탄식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2년 넘게 규제 완화와 정책 보완을 기다리다 지친 기업인들이 뒤통수를 맞은 듯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기업할 의욕을 북돋아 주지 않은 채 경제 회복을 바라는 건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