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북(北)의 대외 전략을 가늠할 여러 ‘암호’들을 담고 있다. 그 중 김정은이 미국의 ‘올바른 계산법’을 촉구하며,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14일 ‘시정연설에서 천명된 사회주의강국 건설 구상’이라는 글에서 “조선(북한)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 정책 철회 의지와 관계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이틀째 회의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면서도 “제재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선신보는 ‘다른 행동조치’에 대해 ‘핵전쟁 위협을 없애 나가는 군사분야 조치’를 지목했다. 북한이 2월28일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에서 제안하려 했으나 미국이 당장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고 미뤄뒀던 조치를 이번에 요구하겠다는 얘기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심야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이 부분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은 두 가지 정도로 해석된다. 우선 북한의 전략적 실수를 만회하려는 차원이라는 게 정설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막판에 민생과 관련한 유엔 경제제재 해제를 강하게 요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북한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꼴이 됐다. 미국과의 실무 협상을 주도했던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가 ‘하노이 결렬’ 이후 사라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대응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정은은 “어차피 미국과의 대치는 장기전”이라고 언급했다. 벼랑끝전술을 구사하겠다는 것인데 단지 수성(守城)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적절한 공세가 필요한데, 미국에 군사적 조치를 대가로 내놓으라고 주장함으로써 전황을 역전시키겠다는 게 북한의 셈법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요구하는 군사적 조치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철거 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강조하는 ‘새로운 계산법’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해석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로드맵의 최종 목표에 북한 핵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 등을 넣겠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향후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론도 중대 위기에 처할 전망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