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쌀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면서 올해 정부가 농가에 지급해야 할 보조금(변동직불금)이 사상 최대 규모인 1조4900억원을 넘어섰다. 1조4900억원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한국의 농업보조금 상한선이다. 상한선을 넘어서면 통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는 보조금을 강제로 줄여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6년산 쌀 변동직불금 단가를 80㎏(한 가마니)당 3만3499원으로 결정해 21일 관보에 게재했다. 변동직불금은 쌀값이 목표 가격에 미달하면 정부가 차액 일부를 생산농가에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쌀 직불금 1.5조…'WTO 한도' 초과 위기
올해 책정된 변동직불금은 2005년 쌀 직불제가 처음 시행된 이후 사상 최대치다. 80㎏당 1만5867원이던 작년의 두 배 이상이고, 2014년(4226원)보다는 여덟 배나 늘었다. 쌀값(수확기 산지 80㎏ 가격 기준)이 1년 새 15만659원에서 12만9711원으로 폭락하면서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줘야 할 금액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12년간 지속된 쌀 직불금 정책이 이젠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불금은 농산물 시장 가격이 목표 가격에 미달하면 정부가 차액을 농가에 지급하거나 가격 변동과 상관없이 매년 일정액을 주는 보조금이다. 쌀 직불금은 2005년 처음 도입됐다.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2004년 쌀 수매제가 폐지되면서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주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쌀 직불금은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나뉜다. 고정직불금은 쌀 생산량이나 가격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일정 요건을 갖춘 농가에 지급한다. 변동직불금은 쌀의 수확기(10월~이듬해 1월) 평균 가격이 목표 가격(18만8000원)에 미달하면 그 차액의 85%를 주는 보조금이다.

농식품부가 이날 확정한 2016년산 쌀 변동직불금 지급 총액은 1조4900억원이다. 농식품부는 쌀 한 가마니(80㎏) 시장 가격을 12만9915원으로 책정해 변동직불금을 산정했다. 그런데 실제 수확기(작년 10월~올 1월) 산지 쌀값은 12만9711원이었다. 이를 토대로 계산된 예상 변동직불금 총액은 1조4977억원이다.

예상 변동직불금과 실제 지급한 금액 간 77억원의 괴리가 발생한 이유는 WTO의 농업보조금 상한선 때문이다. WTO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 따라 한국의 농업보조금 상한액(AMS)을 1조4900억원으로 설정했다.

가격 변동과 상관없이 지급하는 고정직불금은 농업보조금에서 제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가 농가에 줄 수 있는 변동직불금 상한선은 1조4900억원이 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확기 산지 쌀값을 적용하면 AMS를 약간 초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조4900억원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변동직불금을 지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변동직불금 규모가 사상 최대치에 달한 것은 지난해 대풍년으로 생산은 늘었지만 수요는 줄어 쌀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산지 쌀값(80㎏)은 12만9628원을 기록했다. 쌀값이 13만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95년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농업계에서는 “올해는 어떻게 넘겼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걱정했다. 올해는 AMS 한도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에서 삭감이 이뤄져(80㎏당 174원) 별 문제 없었지만 앞으로 쌀값이 더 떨어져 삭감폭이 커지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직불제 개편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직불제를 통해 목표 가격보다 낮은 쌀값으로 인한 농가 손해를 보전해주는 탓에 과잉 생산과 쌀값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도 벌써 수차례 쌀 직불제 개편을 밝혔다. 쌀이 아니라 다른 작물을 키워도 변동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