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사진)이 유럽을 방문해 그리스 재정위기 문제에 잘 좀 대응하라고 훈계했다. 크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유럽에 너무 일찍 출구전략을 이행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월가의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유럽의 비난을 받아왔던 미국이 이번에는 그리스 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럽을 꾸짖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유럽의 부채 위기가 커질수록 유럽에 대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의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트너 장관은 이날 런던에서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금융위기의 교훈은 정부가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 부채 문제를 뒤늦게 인식한 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요청도 굼떴다는 지적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가이트너 장관의 개입이 없었다면 유럽 국가들의 그리스 구제금융 지원책 마련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미국은 여기고 있다.

가이트너 장관은 27일 독일 베를린으로 이동했다. 독일에서도 가이트너 장관은 독일 등 유럽의 금융시장 감독 조치와 관련해 '한마디'했다. 다만 금융시장 규제의 강화 필요성에는 합의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자본충실도 테스트)를 통해 은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켰지만 유럽 은행들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자본확충이 충분치 않다고 질타하는 분위기다.

가이트너 장관과 동행하고 있는 로머 위원장도 "유럽 국가들이 재정확장 정책을 조기에 거둬들이려는 움직임을 경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부채 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신속하게 지원하되 때이른 출구전략 이행은 위험하다고 충고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미국과 유럽의 위상은 금융위기 초기와는 완전히 거꾸로 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때 유럽은 미국의 대규모 구제금융과 미국식 금융시스템이 세계경제의 불안 요소라고 비난했다. 2008년 9월 페어 스타인브뤼크 당시 독일 재무장관은 "더 많은 이익만 추구하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정책은 미쳤다"며 "그런 미국은 슈퍼파워 지위를 점점 잃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WSJ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세계경제 리더십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의 해결사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24~25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미-중 전략 · 경제대화에서 가이트너와 다른 미국 측 참석자들은 중국의 위안화 절상 문제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