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나폴레옹이 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유배 중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쉰 하나였다.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사인을 위암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랑스 황제이자 이탈리아 왕이며 스위스 연방의 조정자이자 라인동맹 호국경을 지낸 인물이 '배가 아파서' 죽었다니….누군가가 암살하거나 독살했을 거라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그 중 하나가 비소 독살설이다. 시종장의 회고록에 복통과 구토 등 비소 중독자의 증상이 기록돼 있고,오래도록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으며,결정적으로 머리카락 표본의 비소 농도가 보통 사람의 몇백 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유배지 저택의 벽지에 다량의 비소가 함유돼 있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2005년 스위스 연구팀은 나폴레옹이 사망 전까지 20년 동안 입었던 바지 열두 벌을 비교해 체중 변화를 추정하고 이를 남성 위암 환자 270명의 체중 변화와 비교한 결과 두 수치가 정확히 일치한다며 독살설을 일축했다.

같은 해 스코틀랜드에서는 나폴레옹 부검에 직접 참여한 군의관의 기록까지 발견돼 공식 사인에 신빙성을 더해 줬다. 그는 '위장 전체에 병이 진행됐으며 암인지 섬유종인지 딱딱한 상태였고 병이 한참 진행된 상태여서 통증이 심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처럼 유명한 인물의 죽음에는 늘 음모론이 따라다녔다. 역사 전공의 저널리스트인 피터 하우겐은 《왕실 미스터리 세계사》에서 왕가에 얽힌 음모론을 현대 법의학과 심리학의 렌즈로 재조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왕족들의 '추문'은 호사가들의 단골 메뉴다. 영국 왕 헨리 8세는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아내가 여섯 명이나 된 데다가 재혼을 위해 가톨릭에서 영국 국교회로 종교까지 바꿨던 그가 딸 메리 1세와 아들 에드워드를 선천성 매독으로 잃자 '매독설'은 더욱 힘을 얻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주치의가 헨리 8세에게 당시 매독 치료제였던 수은을 처방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이를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 시절에는 어린 나이에 죽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꼭 전염병 탓으로 볼 수도 없다. 그 대신 학자들은 헨리 8세 가족들이 비타민 부족으로 괴혈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과일은 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고 채소는 기피 음식이었다. 당시 지체 높은 사람은 마땅히 고기,가금류,생선을 먹어야 한다고 믿었다. 채소는 농부나 가축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겼다. 실제로 비타민C가 부족하면 '잇몸에서 피가 나고 치아가 썩고 다리와 발에 염증이 생길' 수 있으며 헨리 8세의 일그러진 코처럼 연골 조직이 괴사할 수 있다.

저자가 훑어가는 왕가의 스캔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만날 수 있다. 1997년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숨진 다이애나를 두고 파충류 외계인의 소행이라거나 국제 비밀조직인 프리메이슨의 음모라는 주장,영국 왕실이 개입했다는 설 등이 난무했다.

이 모든 입방아는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더욱 드라마틱하게 증폭됐다. 사고가 발생한 날 밤 갑자기 '호출'을 받고 운전대를 잡은 운전기사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급히 불려간 '사실'까지도 의도적으로 왜곡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저자도 전문가들의 결론을 다양하게 인용하는 한편으로 훗날 '다른 전문가들이 이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 놓는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