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에 각각 5백억원씩 당좌대출한도를 늘려줌에 따라 말로만 떠돌던 현대의 자금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이와관련, 금융감독위원회와 채권단은 현대의 자금문제는 두 회사의 일시적인 자금수급 불일치에서 비롯됐을 뿐 그룹 전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만 정주영 명예회장의 후계구도를 포함한 그룹 지배구조를 좀더 분명히 하고 구조조정의 강도를 높여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은 자금문제와는 별개로 현대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밝혔다.

<> 일부 현대계열사 자금압박 =현대건설의 경우 건설경기 침체로 지난해 1천2백8억원의 적자를 낸데다 최근 투신사 종금사 은행 등이 현대건설 어음과 회사채 만기 연장을 회피, 자금난이 가중됐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만기도래한 채권 5천3백억원을 갚아야 했을 정도로 심한 자금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건설 관계자는 "당좌대출한도가 3천2백억원으로 늘어났고 앞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월 6백억~2천억원 수준이어서 더이상 유동성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일부 금융기관들이 지난달부터 자금을 회수하면서 사정이 나빠졌다고 외환은행은 밝혔다.

일부 금융기관들이 만기도래한 기업어음과 채권을 연장해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외환은행은 당좌대출한도를 5백억원 늘려 주고 다른 채권금융기관들도 대출금 연장에 동의, 상선은 일단 자금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이연수 부행장은 "현대상선의 월 운임수입이 4천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현재 자금확보에 어려움은 없다"며 "채권금융기관들도 이미 회사채나 기업어음 만기를 6월 이후로 연장해 줬다"고 말했다.

<> 그룹전체 자금사정 =일부 계열사를 제외한 현대그룹의 자금은 넉넉한 편이다.

지난달 22일 기준 현대그룹의 당좌대출 소진율은 50.6%였다.

당좌대출한도란 은행에서 아무때나 꺼내쓸 수 있는 계좌로서 사실상 현금이나 마찬가지다.

2조1천여억원의 현대그룹 당좌대출한도중 추가 인출이 가능한 돈이 1조원 정도다.

그룹 전체의 금융권 차입금은 지난달말 장기 23조6천여억원, 단기 7조8천여억원 등 모두 31조4천여억원이다.

지난해 6월보다는 10조원이 감소했고 지난해말보다는 1조원이 줄었다.

올들어 그룹 전체적으로 흑자를 내 이자상환이나 원금일부 상환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 강도높은 구조조정 불가피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현대 계열사들에 대해 신규자금을 지원한 이상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서근우 금융감독위원회 제2심의관은 "현대 문제는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되면서 시장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현대투신문제를 거치면서 다른 계열사의 자금난 문제가 불거졌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평가는 현대문제가 기본적으로 계열사의 과다부채나 영업력저하보다는 신뢰성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신뢰를 얻기 위한 강도높고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게 채권단과 금감위 입장이다.

우선 계열분리와 자산매각을 신속히 추진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줄 것을 강도높게 요구할 계획이다.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현대가 내놓은 구조조정계획안을 정밀검토한 후 채권단의 입장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