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울 것인가 버릴 것인가"

정부가 보통휘발유의 옥탄가 기준을 대폭 낮추기로 하면서 정유업계가
"고급휘발유"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고급휘발유를 자유화 시대에 걸맞는 고가의 차별화 제품으로 육성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아예 생산을 포기할 것인가를 놓고 저울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고급휘발유는 옥탄가가 96 이상인 휘발유로 외제차와 고급중형차용으로
팔리는 비싼 제품.

노킹현상을 발생시키지 않는 안정성 정도인 옥탄가가 보통휘발유(옥탄가
91~95) 보다 높기 때문에 리터당 현재 1백17원이 비싼 9백46원에 팔리고
있는 휘발유다.

그동안 고급휘발유는 보통휘발유의 품질 수준이 너무 높아 이름값을
못해온 게 사실.

지난 95년 11월부터 쌍용정유를 제외한 정유4사가 판매에 나섰다가 워낙
수요가 적어 최근에는 유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이름만 걸어놓고 있는
상태다.

LG정유는 지난해 4월 판매부진을 이유로 판매를 중단했고 한화와 현대는
수도권에 각각 8개와 2개 주유소에서만 팔고 있다.

미군납용 수요가 많은 유공만이 한달에 6백40드럼 정도를 전국 64개
주유소에서 시판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유공의 경우도 전체 휘발유매출의 0.15%에 불과할 정도로 판매
실적은 미미하다.

이처럼 이름값을 못해온 고급휘발유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최근 정부가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보통휘발유의 옥탄가를 80대이하로 대폭 낮추기로
방침을 정하면서부터이다.

유가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최상의 서비스를 곁들인 고가차별화제품을
내놓고 싶어하던 정유업체들이 다시 고급휘발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동안에는 보통휘발유의 옥탄가가 대부분 95수준이고 여기다 첨가제를
넣을 경우는 옥탄가가 97까지 올라 고급휘발유와 거의 차이가 없어
고급휘발유가 파고들 시장이 적었었다.

업체 가운데는 특히 현재 고급휘발유를 가장 많이 팔고 있는 유공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공 관계자는 "판매량을 크게 늘릴 계획은 없지만 휘발유의 가격대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고급휘발유의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와 현대의 경우도 고급휘발유를 차별화 제품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LG정유와 쌍용정유등은 고급휘발유에 대해 현재로선 생산계획이 없지만
관심은 많은 편이다.

업체들은 그러나 정부가 옥탄가를 1포인트 올리는데 연간 2백억~3백억원의
쓸데없는 비용이 발생한다며 옥탄가 낮추기에 나서고 있는데 고옥탄가,
고가의 휘발유를 판다고 내놓고 떠들수가 없어 조용히 일을 추진하고 있다.

정유업계가 가격자유화 이후 업체간 가격차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맡물려 고급휘발유 판매전략이 어떤 결론을 맺을 지 주목된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