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의원(오른쪽 두 번째) 등이 23일 선거제와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인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의원(오른쪽 두 번째) 등이 23일 선거제와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인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23일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대상 안건)에 올리기로 한 합의안의 당내 추인 절차를 마쳤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이날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어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했다. 이들 여야 4당은 25일까지 해당 상임위원회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위에서 관련 법안을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다만 선거제 개편안과 맞물린 공수처 도입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사개특위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바른미래당 의총에서 찬성표가 정족수인 3분의 2에 못 미쳐 합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는 못했다. 이들 의원이 사개특위에서 반대표를 던지면 패스트트랙 통과는 어렵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긴급 의총을 열어 패스트트랙의 물리적 저지 등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1표차로 '바른미래 관문' 넘은 패스트트랙…사개특위서 '최후 數싸움'

바른미래당이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골자로 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합의안’을 가까스로 추인하는 데 성공했지만 본회의 통과를 위해선 넘어야 할 관문이 남아 있다.

'패스트트랙' 여야 4당 의총 통과
4시간 격론 끝 1표 차 통과

김관영 원내대표는 23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브리핑을 통해 “바른미래당이 최종적으로 여야 4당의 합의안을 추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합의안의 취지를 살려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당론이 아닌 당의 입장이 결정됐다고 표현해달라”고 덧붙였다.

당론이 아니면 각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강제적으로 찬성표를 던지지 않아도 된다. 이날 의총엔 23명이 참석했으며, 합의안은 찬성 12명, 반대 11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도 의총을 열어 일사천리로 합의안을 추인했다.

패스트트랙 찬성파인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차분한 토론이 이어졌다”고 했지만 의총장에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55분까지 3시간55분 동안 고성이 오가며 격론이 이어졌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특히 목소리를 높였다. 하태경 의원은 “(선거제 개편은) 게임의 룰과 관련된 것인데, 이를 다수파 의사대로 강행하면 민주주의와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며 “오늘 의총은 김 원내대표의 사퇴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욱 의원은 “김 원내대표를 원내대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바른미래당 공수처안을 내다버리고 (제한적으로 기소권을 주는) 민주당안을 그냥 받아온 다음에 과반으로 통과시키려는, 야당 파괴를 위한 공작 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의총에서 패스트트랙 찬성파와 반대파는 합의안 추인에 출석 의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지, 소속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지를 놓고도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결국 김 원내대표의 주장에 따라 ‘과반 찬성으로 당의 입장을 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과반 찬성으로 정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두 번 모두 찬성 12표, 반대 11표가 나왔다.

아직 갈길 먼 패스트트랙

바른미래당의 입장이 정해졌지만 각 상임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려면 변수가 아직 남았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선 국회의원 5분의 3(180명) 또는 안건 소관 위원회 위원의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전체 국회의원 180명의 동의를 얻는 건 쉽지 않아 상임위별로 해결해야 한다.

선거제 개편안이 걸려 있는 정개특위 위원은 민주당 8명, 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2명, 비교섭단체 2명으로 총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1명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심상정 위원장(정의당)과 민주당 의원 8명, 천정배 평화당 의원, 김동철·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이 패스트트랙에 찬성하고 있어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공수처법을 다루는 사개특위는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 이상민 위원장(민주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 8명, 박지원 평화당 의원 등 확실한 찬성파가 9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오신환·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패스트트랙 요건인 11명을 채우지 못한다.

김 원내대표는 두 의원과 우선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여야 4당 원내대표 합의문이 의총에서 추인됐기 때문에 (오 의원, 권 의원이)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사개특위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3분의 2가 동의해 당론으로 결정된 게 아니라면 당의 입장을 따르는 건 어렵지 않겠나”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득에 실패하면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오 의원의 상임위를 옮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바른미래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는 정책위원회 의장과 협의해 소속 의원의 상임위 배정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책위 의장인 권은희 의원과의 협의가 다시 필요하다. 정치권에선 공수처 설치가 무산되면 선거제 개편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더라도 국회 본회의 통과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임도원/김우섭/고은이/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