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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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B씨와 혼인해 아들 C를 두었습니다. A씨는 건설기계 제조회사를 설립해 큰 부를 일궜습니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의 비서로 일하던 J씨와 내연관계를 맺게 됐습니다. 그 사이에서 혼외자인 딸 K를 낳게 됐습니다. A씨는 J씨와 K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고 아파트도 마련해 줬습니다. 부인인 B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K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로 올리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A씨는 지병인 간암으로 사망하게 됐고, 결국 K는 A씨의 법적 자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A씨가 사망하고 아파트(시가 약 80억원)와 현금성 자산 약 70억원은 아내인 B씨가, A씨가 경영하던 회사 주식(시가 약 200억원)은 아들인 C가 물려받는 것으로 B씨와 C 간에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마쳤습니다.

이 경우 A씨의 혼외자인 K는 권리를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우선 K가 A씨의 상속인이 되기 위해서는 A씨의 법적 자녀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합니다. 인지라 함은, 혼외자와 그 아버지 사이에 법률상의 친자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인지청구의 소는 아버지인 A씨를 상대로 제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인지청구의 소는 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제기해야만 합니다(민법 제864조). 이렇게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으면 K는 A씨를 자신의 아버지로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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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에는 소급효가 있기 때문에 인지청구의 승소판결을 받으면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소급해서 처음부터 상속인인 것으로 취급됩니다(제860조). 따라서 K는 다른 공동상속인 B씨와 C를 상대로 상속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상속재산분할은 원래 공동상속인 전원이 협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씨가 사망한 후 A씨의 상속재산은 이미 아내인 B씨와 아들 C가 분할협의를 통해 나누어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이미 분할이 이루어졌는데 다시 재분할을 허용하게 되면 거래의 안전과 법적 안정성이 침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속재산의 재분할을 요구하는 대신에 상속분에 상당한 가액의 지급만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제1014조). 이를 ‘피인지자의 가액지급청구권’이라 합니다. 따라서 K는 아파트나 주식 대신에 자신의 법정상속분인 2/7에 상응하는 가액 100억원을 B씨와 C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K는 자신이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담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만약 B씨와 C가 이미 상속세를 전액 납부했다면 B씨와 C는 K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한편 B씨와 아들 C는 혼외자 K에 대해 기여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제1008조의2 제4항). K가 혼외자로서 A씨의 상속재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반면, B씨 또는 C가 적극적으로 A씨의 사업을 도운 경우에는 A씨의 재산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피인지자의 가액지급청구권과 관련해서는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피인지자의 가액지급청구권의 성질을 상속회복청구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 그대로 적용됩니다(제999조). 따라서 K는 자신의 상속권이 침해된 사실을 안 날(인지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년 내에 가액지급청구를 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하게 됩니다(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6므2757,2764 판결).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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