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일은 엔론사가 파산한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전후해서 우리나라 어느 언론에서도 엔론에 대한 보도가 없었다. 이제 엔론사건은 우리의 기억에서 아주 잊어진 것일까. 다시 3년전 그 역사의 현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탐욕이 어떻게 거대한 엔론을 침몰 시켰는지 살펴보자. 엔론의 교훈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2일, 파산결정이 보도되기 몇 달 전만 해도 엔론은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서 7위를 차지했으며 혁신과 경영진 자질 분야에서 4년 연속 1위에 오른 그룹이었다.

 

엔론 본사 건물에 있는 ‘세계일류회사(World leading company)’라고 적힌 현수막을 바라보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던 종업원들은 하루 아침에 회사에 배신당한 낙오자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존경, 정직, 대화, 탁월함’이라는 엔론의 핵심가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엔론의 파산 이후 엔로니티스(Enronitis)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것은 ‘엔론과 같은(Enron as it is)’을 축약한 말로 엔론처럼 재무구조가 부실하거나 변칙회계 의혹에 휩싸인 기업을 지칭하는 말이다.

 

엔론의 2001년 1/4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주당 순이익 18% 증가, 분기별 총수익 281% 증가(500억달러), 순수익 20% 증가(4억달러) 등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2001년 회계년도의 수익목표를 주당 1.70달러에서 1.80달러로 올려 잡았다. 엔론의 미래는 온통 장밋빛이었고, 종업원과 언론들은 엔론의 경영진이 내놓는 달콤한 말에 각종 특혜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엔론의 수익은 정상적인 거래에서 창출된 것이 아니었다. 엔론의 경영진은 법망을 피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부정을 저질렀다. 엔론은 우선 특수관계를 가진 합자회사를 하나 만들었다. 이 회사는 외부투자자가 3% 이상의 지분을 갖는 회사, 즉 엔론과 연결재무제표를 만들 필요가 없는 회사이다. 외부투자자의 자본이 3%가 넘으면 자회사가 아니라는 회계기준을 악용한 것이다.

 

그리고 합자회사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뒤 엔론의 자산을 합자회사에 파는 척하면서 대출금을 엔론으로 끌어들였다. 엔론이 받은 돈은 수익으로 기록되고 부채는 합자회사의 몫으로 남게 된다. 엔론은 이런 회사를 무수히 만들어 막대한 돈을 끌어들였고, 단기간에 재무상태가 양호하고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회사로 탈바꿈 했다.

 

이 같은 거래 과정에서 엔론의 최고재무책임자 엔디 패스토는 3000만 달러의 커미션을 합법적으로 챙겼고 그 외의 경영진 역시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팔아 수백만달러씩 이득을 봤다. 엔론 경영진은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 있는 엔론 자회사의 가스관이 새고 있음을 1년 전에 알고 있었는데도 그 사실을 무시했다. 스톡옵션을 못 받을까 봐서다. 1년 뒤인 1996년 11월21일 33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친 대형 가스폭발 사고가 터졌다.

 

회계감사기관인 아더 앤더슨도 직원 수백명을 파견해 회계부정을 도왔다. 엔론이 아더 앤더슨을 장악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엔론은 위장된 장부를 수년간 열심히 조사하던 엔론 내부의 회계 감사원들을 쫓아내고 대학을 갓 졸업한 아더 앤더슨의 신입 회계사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엔론의 회계를 감시한 아더 앤더슨은 정상가격보다 몇 배 높은 수수료를 챙겼다.

 

하지만 엔론의 외줄타기 놀음은 9·11테러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엔론은 결국 2001년 10월 16일 3/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비반복적 손실’ 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10억1000만달러의 부채를 밝힐 수 밖에 없었고, 두 달 뒤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아더 앤더슨도 기업과 회계법인 간의 밀착과 자체의 부실회계가 드러나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영국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파산한 엔론을 돈, 섹스 그리고 난잡한 생활을 혼합한 '칵테일'이며, 미국판 '아방궁'으로 묘사했다. 사내불륜이 만연했고 고위 임원들의 이혼이 유행했으며 심야회의가 끝난 뒤 유리 벽으로 가려진 사무실에서 벌어진 정사에 관한 얘기는 엔론 사옥이 위치한 휴스턴 시내의 화젯거리였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엔론 임원들은 휴스턴 교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 같은 유명 인사들이 모여 사는 리버 오크스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엔론부인'으로 통한 엔론 직원들의 부인들은 메르세데스 승용차와 부드러운 털 스웨터, 가죽바지 등으로 유명했다. 엔론은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MBA 출신 인재들이 휴스턴에 오도록 설득하면서 탐욕과 보상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엔론 사태로 투자자들도 많은 것을 배웠다. 기업 경영자들은 언제나 '탐욕(greedy)적' 이며, 감사를 벌이는 회계사들도 '오류를 범할 수(fallible)'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엔론의 거품과 파산은 부도덕한 경영진, 비리를 눈감아준 회계법인, 기업감독을 게을리했던 정부당국, 무책임한 언론의 합작품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옥스퍼드 대학의 니얼 퍼거슨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칼 마르크스의 예언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분식회계를 탐욕스러운 CEO들이 회계법인과 짜고 소액 투자자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그래서 분식회계를 뿌리뽑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붕괴한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엔론사태가 9·11 테러보다 미국경제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4년 세모에 바라본 엔론기업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일까. 그럼 우리 기업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는가. 언론매체에 CEO의 탐욕과 부정에 관한 민망한 기사들이 다 사라졌는가.

 

수 년전 무려 42조원의 분식회계가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자 대우그룹의 K 전 회장은 “업계의 관행인데 억울하다. 우리그룹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벤처신화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새롬기술의 O 전 사장. 1999년 다이얼패드라는 무료 인터넷 전화프로그램 개발로 코스닥 시장의 황제주를 이끌었던 O 전 사장은 2002년 분식회계와 허위공시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지금도 우리 내면의 밑바닥에서 탐욕이 혀를 낼름거리며 선악과를 따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탐욕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신이 주신 인간의 한계인지,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탐욕을 기록하도록 예정된 것은 아닌지, 적어도 확실한 것은 아직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인간의 탐욕을 극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엔론이 정말 폼페이 최후의 히스토리 이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다음 칼럼은 인간의 탐욕을 건강하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변화 시키는 방법론적인 접근과 더불어 구체적인 대안 그리고 우리의 과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CEO 기본기 만들기(9) : 탐욕, 엔론 폼페이 최후의 히스토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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