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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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에 손을 대는 병사가 늘고 있다. 부대 내에서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된 데다 월급도 급격히 오르면서 여윳돈을 들고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정부가 병사들의 월급 인상과 휴대폰 사용 시간 확대를 계속 추진하면서 ‘국방 개미’ 수는 갈수록 증가할 전망이다.

시간외거래로 주식 투자하는 군인들

휴대폰 허용·월급 인상…'국방 개미' 확 늘었다
11일 군에 따르면 강원 고성의 육군 22사단에서 복무 중인 A 병장은 지난달 반도체 관련주인 주성엔지니어링 주식 20주를 주당 1만7000원에 매도했다. 그가 거둔 수익률은 50%에 가깝다. 상병 시절부터 매달 월급의 절반 정도를 주식에 투자한 그는 지금까지 20%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A 병장은 주변에 주식 투자하는 병사가 흔하다며 “10명이 지내는 한 생활관에서 보통 2~4명은 투자한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주식시장에 나타난 것은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지면서다. 국방부는 2018년 시범운영을 거쳐 이듬해 4월부터 전 부대 병사들의 일과 후 영내 휴대폰 이용을 허가했다. 부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병사들은 대체로 평일 기준 오후 5시30분에 개인 휴대폰을 받아 밤 9시에 다시 반납한다.

장이 마감된 뒤에야 휴대폰을 쓸 수 있지만 주식 거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간외거래를 하거나 예약 매도·매수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교대근무를 서는 병사들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낮잠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열리는 정규장에도 참여할 수 있다.

늘어난 월급도 주식 투자에 뛰어든 요인 중 하나다. 2023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0만원으로 전년(67만6100원) 대비 48%가량 증가했다. ‘군 적금’으로 불리는 장병내일준비적금에 가입하면 매월 최대 40만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가지만, 여전히 많게는 60만원의 여윳돈이 남는다. 상병과 일병 월급도 각각 80만원과 68만원에 달한다.

병사들 사이에선 주당 1만~10만원인 종목의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나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공군으로 복무 중인 한 병사는 “같은 생활관을 쓰는 병사들끼리 월급을 10만원씩 모아 펀드처럼 만들어 주당 가격이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투자 중독 등 대책 마련 필요

병사들 사이에서 주식 투자 문화가 퍼지면서 군 간부들은 병영 관리에 문제가 생길까 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병사들이 투자에 지나치게 중독되거나 투자 실패로 우울감에 빠지면 부대 기강도 해칠 수 있어서다. 심하게는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1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대·남성·신규 투자자는 하루 안에 같은 종목을 매수했다가 다시 매도하는 ‘일중거래’ 비중과 종목교체율이 매우 높은 투기적인 투자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주식 투자를 막을 방법은 없다. 군인의 지위와 복무에 관한 기본법은 군인이 금융업과 같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 단순 주식 투자까지 규제하진 않는다.

늦기 전에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국방부는 병사의 휴대폰 소지·사용 시간을 아침 점호(오전 6~7시) 이후부터 오후 9시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다음달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2025년까지 병장 월급을 15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육군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는 한 부사관은 “병사들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시대 흐름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간부 입장에선 부대 관리가 한층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