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이모씨(35)는 이달 초 독감에 걸려 동네 의원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5분가량 진료를 받고 수액제를 맞는 데 4만5000원을 썼다. 이후 보험 청구를 위해 진료기록 사본 발급을 요청했다.

문제는 병원 측이 요구한 수수료 수준이었다. 상한선(1000원)보다 열 배 비싼 1만원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치료비의 4분의 1가량을 진단서 발급비로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씨는 “보험 청구를 하기 위해 다른 병원에서 또다시 진료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비싼 가격에 진단서를 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대 200배 수수료 부과도

"1000원짜리 진료기록 사본, 5만원 내라니"
의료기관이 보험 청구 등에 필요한 각종 의료증명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상 한도보다 적게는 다섯 배, 많게는 200배 넘는 수수료를 부과하는 곳도 있다. 병원 측이 수수료를 과다 청구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환자 권익이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료 기록에 관한 증명서는 발급 수수료 상한선이 법에 정해져 있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을 보면 일반진단서가 2만원, 사망진단서는 1만원, 진료기록사본은 1~5장 기준 장당 1000원 등이다. 정부는 총 30개 증명서에 대해 수수료 상한선을 정해놨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한선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지난 16일 DB손해보험은 “복지부 기준보다 과도하게 증명서 발급 수수료를 부과했다”며 병원 172곳을 보건소에 신고하기도 했다.

DB손해보험에 따르면 이들 병원은 상한 금액의 최대 10~200배에 이르는 수수료를 환자들에게 부과했다.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을 앓고 있는 김모씨(60)는 “허리 수술을 받은 뒤 자기공명영상(MRI) 결과를 영상CD로 발급해달라고 했더니 기준(1만원)보다 열 배 비싼 10만원을 수납하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냈다”고 했다.

“과다 징수, 법적 처벌해야”

수수료 과다 징수는 주로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이 아닌, 인력이 적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벌어진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일반 병원 등은 대체로 상한선에 맞춰 증명서 수수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전국 의원 3만576곳을 살펴보니, 한 의원은 법적 상한선(2만원)보다 다섯 배 비싼 10만원에 일반진단서를 발급했다. 상한선이 장당 1000원(1~5장 기준)인 진료기록사본을 발급하는 데 50배 비싼 5만원을 요구한 곳도 있었다. 사망진단서(상한 1만원)는 20만원, 3주 이상 상해진단서(상한 15만원)를 150만원에 발급해준 의원도 적발됐다.

의료계에선 이 같은 수수료 과다 징수를 ‘정보비대칭’의 결과로 본다. 진료받은 병원이 진료 기록을 독점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병원이 요구한 수수료를 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병원 수가 적은 지방에선 증명서 발급 수수료가 비싸다고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소장은 “발급 수수료는 의료기관이 일방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환자 대부분은 법적 상한선이 있는지 모르고, 적정 수수료가 얼마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부실한 법과 제도도 문제로 꼽힌다. 병원이 법에 정해진 발급 수수료 상한선을 어기더라도 보건당국이 해당 의료기관에 처벌 및 시정명령을 내릴 근거가 없다.

수수료 상한선을 지키라고 권고만 내릴 뿐이다. 최성철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지역 또는 의료기관 규모에 따라 증명서 발급 수수료가 제각각인 점도 문제”라며 “수수료 상한선을 지키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길성/장강호/이광식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