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세균의 계절’이다. 뜨거운 햇빛과 높은 습도는 각종 세균을 키우는 자양분 역할을 한다. 또 무더운 날씨는 세균의 공격 대상인 사람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린다. 공격수는 강해지고, 수비수는 약해지니 결과는 뻔하다. 식중독, 장염 등 감염병 환자가 여름철에 급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감염병은 ‘잠깐 앓고 지나가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중증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만성 간 질환,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걸리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여름철에 주의해야 할 감염병은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하고, 예방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피부에 붉은 반점 생기면 ‘패혈증’ 의심

질병관리청은 지난 14일 올해 첫 비브리오 패혈증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비브리오 불니피쿠스’라는 세균에 의해 감염되는 염증이다. 바다에 사는 이 세균은 소금 농도가 1~3%일 때 가장 잘 번식한다. 덜 익힌 어패류를 먹거나 상처 부위에 바닷물이 닿으면 감염될 수 있다. 이 환자 역시 7일 간장게장을 먹은 뒤 발열, 전신 피로감, 피부 병변 등이 일어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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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간 질환자, 당뇨 환자, 알코올중독자, 부신피질호르몬제나 항암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람 등은 비브리오 패혈증에 더 취약하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걸리면 치사율이 30~50%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비브리오 패혈증 확진자 70명 중 25명이 사망했다. 이 병에 걸리면 발열·오한·구토·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발열 후에는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거나 물집이 잡힌다. 심하면 피부가 괴사하기도 한다. 다리에 부종이 생기거나 멍처럼 검보랏빛 얼룩점이 생기는 것도 비브리오 패혈증의 증상이다.

임태원 대동병원 소화기내시경센터 과장은 “설사가 1~2일이 지나도 멈추지 않거나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며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장 속 세균이나 독소를 배출하지 못해 합병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리면 괴사한 피부 조직을 제거하거나 근막절개술(염증이 생긴 부분의 근막을 절개해 부종을 가라앉히는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세팔로스포린, 플루오로퀴놀론,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사람 간 전파되는 질병은 아니기 때문에 환자 및 접촉자를 따로 격리할 필요는 없다.

예방법은 간단하다. 조개 등 어패류 및 해산물을 섭씨 85도 이상 온도로 가열 처리해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한다. 껍데기가 열린 뒤 5분 더 끓이는 식이다. 영상 5도 이하 저온 보관은 필수다. 피부에 상처가 생겼다면 가급적 바닷물에 닿지 않도록 한다. 닿았다면 깨끗한 물과 비누로 즉시 노출된 부위를 씻어야 한다.
만성 간질환·당뇨환자, 비브리오 패혈증 걸리면 치사율 30~50% [이선아 기자의 생생헬스]

백신 맞으면 A형 간염 95% 예방

A형 간염도 여름철에 자주 나타나는 질환이다. 주로 오염된 물과 식품을 통해 전파된다. A형 간염은 위생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발병해 ‘후진국 병’으로 불리지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많은 환자가 나오고 있다.

전체 환자의 70~80%는 20~40대다. 대한민국이 ‘깨끗’해진 1970~199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까닭에 A형 간염의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게 원인으로 꼽힌다. 위생 수준이 떨어졌던 이전 세대는 대부분 어린 시절 A형 간염에 대한 항체가 형성됐다는 게 질병청의 설명이다. 6세 미만 어린이는 A형 간염에 걸려도 대부분 무증상 및 경증으로 지나간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평균 28일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 두통, 피로감 등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눈의 흰자가 노랗게 변하거나 암갈색 소변이 나오고, 오른쪽 복부에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심하면 ‘전격성 간염’(심한 간 손상으로 인해 간성뇌증으로 진행되는 질환)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A형 간염은 전염성이 높지만 치사율은 낮은 편이다. A형 간염의 사망률은 0.1~0.3%다. 50세 이상 치사율도 1.8% 정도다. 대부분 3개월 안에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그러다 보니 정식 치료제도 나오지 않았다. 고단백질 위주로 먹고 간에 ‘휴식’을 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쉽게 회복된다. 전격성 간염으로 진행되거나 구토로 탈수 증상이 나타나면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백신을 맞으면 A형 간염을 95% 이상 예방할 수 있다. 접종 대상은 12~23개월 영아와 A형 간염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모든 성인이다. 최근 2주 안에 A형 간염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다면 예방접종을 하는 게 좋다. 6~12개월 간격으로 총 두 번 맞으면 된다. 질병청 관계자는 “20~30대는 항체검사 없이 예방백신을 맞고, 40대 이상은 항체검사 결과 항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접종한다”고 말했다.

A형 간염은 평소 위생수칙만 잘 지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요리 전, 식사 전, 용변 후에는 비누로 30초 이상 손을 씻어야 한다. 과일은 껍질을 벗겨 먹는 게 좋다.

수족구 방치하면 뇌수막염 될 수도

5세 미만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수족구를 ‘여름철 블랙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 수족구는 말 그대로 손과 발에 수포성 발진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콕사키바이러스, 엔테로바이러스 등 장 바이러스로 인해 발병한다. 침, 가래, 콧물, 진물 등 분비물을 통해 전파되는 만큼 환자가 만졌던 물건에 닿으면 걸릴 수 있다.

2019년 기준 전체 수족구 환자 중 80%가 5세 미만이었다. 걸리면 열이 나고, 1~2일 후엔 입 안의 볼 안쪽, 잇몸, 혀 등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반점이 수포 및 궤양으로 변하기도 한다.

수족구는 보통 7~10일 이내에 저절로 회복된다.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타이레놀, 부루펜 등 해열제로 열을 낮추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드물게 뇌수막염, 뇌실조증, 뇌염 등 중추 신경계 합병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근염, 신경성 폐부종 등도 수족구 합병증으로 꼽힌다. 아직 면역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영아가 수족구에 걸리면 뇌수막염, 신경성 폐부종, 폐출혈, 쇼크 등 합병증의 가능성이 커진다.

수족구는 손씻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아직 예방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열이 많이 나고 구토를 한다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수족구로 확진되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 등에 보내지 않는 게 좋다. 아이가 만졌던 장난감과 물건 표면은 비누와 물로 세척하고, 소독제로 닦아야 한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