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퇴직금 중간 정산을 압박한 정황이 있다고 해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중간 정산을 신청했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면 적법한 퇴직금 지급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미래저축은행 직원 A씨 등이 회사 파산관재인인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 등은 2011년 9월 퇴직금 중간 정산으로 받은 자금을 가지고 회사가 경영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시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미래저축은행의 재무 상태는 나아지지 못했고 이듬해 5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데 이어 2013년 4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에 A씨 등은 2011년 당시 퇴직금 중간 정산은 회사의 요청과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무효이고 당시 유상증자 대금으로 사용된 퇴직금은 회사가 다시 줘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반면 파산관재인 측은 직원들이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을 때 "개인 사정으로 퇴직금 정산을 원한다", "퇴직금이 적법하게 지금 됐음을 확인하고 민·형사상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긴 각서를 썼다며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1심은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각서에 이미 행사한 권리가 아닌 앞으로 행사할 권리까지 모두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은 이를 뒤집고 파산관재인에게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은 직원들 중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도 다수 있었다"며 "사측의 유상증자 요청이 있었지만 A씨 등 직원들은 스스로 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A씨 등 직원들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