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수사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행 형사시스템에서는 저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겁니다.”

"잘못된 수사 누구도 책임 안져…나와 같은 피해자 계속 나올 것"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의 ‘적폐 수사 대상 1호 최고경영자(CEO)’였던 이석채 전 KT 회장(사진)은 1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2014년 횡령 배임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4년간의 재판 끝에 올 4월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그는 지난 10일 법원으로부터 형사보상금 695만원 지급 판정을 받았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4년간 34차례 재판에 출석하며 수억원의 변호사 비용을 써야 했던 피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당시 검찰 수사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필두로 윤갑근 1차장검사의 지휘 아래 양호산·장기석 부장검사가 주도했다.

그는 “청와대의 ‘하명 수사’였기 때문에 담당 검사를 원망하진 않는다”면서도 “한 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정부가 기업을 손보기 위해 20가지가 넘는 혐의로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KT 회장에 선임된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갑자기 검찰 수사를 받고 2013년 11월 회장직을 중도 사퇴했다. '정치적 외풍'을 막아내면서 당시 정부와 각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수사를 하면 나라와 기업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법”이라며 “규제 완화보다 더 시급한 것이 전 정부에 대한 보복 관행을 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가 권력의 칼(검찰)을 쥐고 전 정권의 긍정적인 성과도 모조리 적폐로 치부하면,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려워 지식과 기술의 오랜 축적이 필요한 '일류국가'로 도약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지금 검찰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4년간 재판을 통해 겪어야했던 개인적 아픔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당시 검찰 수사 여파로 물거품 됐던 ‘KT의 도전 사업들’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IT기술의 독립을 위해 당시 싹을 키우기 시작한 KT의 위성사업, 클라우드컴퓨팅, 커넥티드카 등 원천기술 사업들이 검찰 수사이후 모두 물거품 된 것이 가장 마음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는 IT분야 핵심 기술의 독립을 염두에 두고 여러가지 신사업을 추진했다.

검찰의 배임죄 적용 남발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진짜 4차 산업혁명 국가로 나아가려면 배임죄를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배임죄를 모든 CEO에게 갖다붙이면 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투자하겠나”고 지적했다.

안대규/김주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