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대학생 100인 토론워크숍'에서 발표를 경청하며 준비하는 학생들. / 사진=NSI 제공
지난 14일 '대학생 100인 토론워크숍'에서 발표를 경청하며 준비하는 학생들. / 사진=NSI 제공
대학생들은 취업, 갑질, 주거 문제보다도 ‘혐오사회’를 2018년 대한민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여혐·남혐 논란부터 난민 문제까지 한국사회 혐오지수가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봤다. 세대·계층간 시각차도 혐오표현으로 치달으며 소모적 갈등만 양산한다는 지적이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은 한경닷컴과 KT&G 후원으로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주(JU)에서 ‘대학생 100인 토론워크숍’을 열었다. 주제는 ‘대한민국 사회 머스트 두 톱텐(Must Do Top10)’. 20대 청년들 시각으로 우리사회의 해결과제를 도출하자는 취지였다.

대학생 100명이 스무 팀으로 나뉘어 3개씩 주제를 뽑아 발표한 뒤 투표를 거쳐 득표순 10개 핵심과제를 추려냈다. 발표시 소속 학교·전공은 블라인드 처리해 선입견을 배제한 채 숫자로 된 팀명만 밝혀 아이디어 위주로 평가했다.
대학생들이 투표로 뽑은 10개 핵심과제. / 출처=NSI 제공
대학생들이 투표로 뽑은 10개 핵심과제. / 출처=NSI 제공
대학생들이 바라본 한국사회 최우선과제는 ‘혐오표현 자제’였다. 고사성어 방식의 ‘어구로다(䥏區怒䫂: 맞지 않는다고 구별하고 성을 냄은 추하지 아니한가)’라는 기발한 조어가 공감을 얻었다. 어그로(관심 끌기 위해 일부러 하는 악의적 표현)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헬조선’ ‘맘충’(모성비하) ‘틀딱’(노인비하) 등 혐오표현이 빈번한 일상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주거난 등 대학생들이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린 문제보다도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공감능력이나 사회의식이 떨어진다는 일각의 비판이 무색한 결과다. 이날 행사에서 KT&G상을 수상한 7팀의 최승은씨(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4)는 “장애인 이동권을 발표주제로 삼아 조사하면서 대학생들의 높은 공감대를 느꼈다. 20대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보편적 인권 감수성이 올라갔기 때문 같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대학생 100인 토론워크숍' 참석자들이 함께 기념촬영하는 모습. / 사진=NSI 제공
지난 14일 '대학생 100인 토론워크숍' 참석자들이 함께 기념촬영하는 모습. / 사진=NSI 제공
두 번째 해결해야 할 과제는 주거난 문제였다. ‘주거난, 20대는 죽어난다’ ‘살(buy) 곳이 아니라 살(live) 곳이 필요해요’ ‘젊어서 숨만 쉬고 삽니다’ 같은 발표가 줄을 이었다. 대학생인 지금도, 취업 후에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계속됐다. 대학가에서 수년간 꾸준히 어젠다(의제)화해온 체감하는 사안이라 “내 얘기”라며 고개 끄덕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갑질 대신 갑의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다하는 ‘갑어치(갑+값어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뜻의 줄임말 ‘갑분싸’를 갑질에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의미로 풀이해 갑질·꼰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학생 요구 과제로는 스테디셀러 격인 취업난 역시 순위권에 들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인용해 ‘내 피·땀·눈물, 내 마지막 자소서(자기소개서)를 다 가져가’로 재치 있게 표현, 호응을 얻었다. 단순히 취업이 어려워 문제라기보다는 청년들의 노력을 존중해달라는 요구다. 해당 주제를 발표한 1팀의 장종빈씨(경희대 일본어과4)는 과도한 스펙 요구와 스펙 상향평준화, 개인의 눈높이, 실무교육 및 사회안전망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문제라고 분석했다.

KT&G상을 수상한 7팀 학생들이 기념촬영했다. 앞줄 맨오른쪽이 황현우씨. / 사진=NSI 제공
KT&G상을 수상한 7팀 학생들이 기념촬영했다. 앞줄 맨오른쪽이 황현우씨. / 사진=NSI 제공
대학생들은 ‘9820971명 서울에서 존부어중’(지역격차 문제 해결) ‘법 블레스 유’(범죄자 처벌 강화) ‘와… 이런 곳에서 일할 뻔’(노동환경 질적 개선) ‘국가유공자들의 허리 좀 펴주세요’(국가유공자 처우 개선) ‘0교시, 지금은 성평등 시간’(젠더 갈등 해소 위한 성평등 교육 의무화) ‘나일리지’(꼰대문화 타파) 등도 한국사회가 꼭 풀어야 할 과제로 들었다.

주제에 대한 투표와 별개로 심사위원들이 방법론·통찰력·참신성·발표역량을 잣대로 평가한 결과 △KT&G상: 7팀(중앙대 교육학과4 김해련씨 외 5명) △한경닷컴 대표이사상: 17팀(중앙대 경영학과3 김소령씨 외 4명)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상: 1팀(경희대 일본어과4 장종빈씨 외 5명), 20팀(고려대 미디어학부3 강민혁씨 외 5명) △장려상: 11팀(가톨릭대 특수교육과3 이유리씨 외 3명), 12팀(고려대 중국학부3 최동수씨 외 4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등상을 받은 7팀은 일기예보 콘셉트로 발표해 주목도를 높였다. 발표자 황현우씨(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4)는 “평범하게 발표하기보다는 20대가 힘들어하는 점을 흐린 날씨나 천둥, 번개 등으로 표현하면 좀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일찍부터 준비해 팀원들이 여러 차례 만나며 의견을 모았는데 수상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왼쪽부터) 심사위원을 맡은 고광철 대표와 김진한 실장, 행사를 주최한 NSI의 최종찬 원장. / 사진=NSI 제공
(왼쪽부터) 심사위원을 맡은 고광철 대표와 김진한 실장, 행사를 주최한 NSI의 최종찬 원장. / 사진=NSI 제공
심사를 맡은 고광철 한경닷컴 대표는 “모든 발표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하고 좋았다. 단 선정된 주제가 비슷해 차별화가 부족한 아쉬움은 있었다”고 평했다. 이어 “이번 행사를 계기로 청년들이 우리사회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스스로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진한 KT&G 사회공헌실장도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 고민을 아프게 들었다. 청년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기성세대도 이를 받아들여 노력하면 갈등이 점차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러분이 됐으면 한다”고 귀띔했다.

행사 내내 자리를 지키며 대학생들 목소리를 들은 최종찬 NSI 원장은 “성장동력이 저하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적극 변화해야 할 때”라면서 “토론에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해 우리사회 미래가 밝아보인다. 새로운 한국사회의 지향점을 가늠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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