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대차보호법 시행과 가을 이사철이 겹치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달 초 전용면적 84㎡ 전세 매물이 8억원에 신고가 거래된 광장동 현대8단지.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과 가을 이사철이 겹치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달 초 전용면적 84㎡ 전세 매물이 8억원에 신고가 거래된 광장동 현대8단지.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하면서 서울 전역에서 전셋값 최고가를 경신하는 아파트 단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31일부터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뒤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치솟고 있다.

가을 '전세대란' 현실화…매물 줄고 가격은 급등
2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광장동 광장11현대홈타운 전용면적 84㎡ 전세는 이달 초 역대 최고가인 11억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거래된 같은 주택형의 전세가(9억2000만원)보다 1억8000만원이나 올랐다. 인근 광장동 현대8단지 전용 84㎡도 8억원에 전세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다. 전농동 래미안크레시티 전용 59㎡ 전세 매물은 5억8000만원, 월계동 꿈의숲SK뷰 전용 59㎡는 4억9000만원에 이달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모두 역대 최고가다.

전세 품귀 현상을 겪는 강남 지역에서도 신고가 행진이 잇따르고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전용 84㎡ 전세 매물은 이달 14억7500만원에 손바뀜했다. 직전 거래가(10억5000만원) 대비 4억원 이상 올랐다.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전용 84㎡도 최근 전세보증금 12억원에 계약이 성사됐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시행된 뒤 집주인들은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바꾸거나 아예 매물 자체를 거둬들이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까지 신고된 이달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은 2399건이다. 새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우려로 거래가 크게 줄었던 전달(6548건)의 3분의 1 수준이다. 1~7월 서울 전세 거래량은 월평균 1만982건이었다.

이사철 '패닉렌트'…강남·강북 할 것 없이 전셋값 최고가 경신

지난 주말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 위해 중개업소를 찾은 신모씨(29)는 계약 직전 전셋집을 놓쳤다. 집주인이 계약하러 앉은 자리에서 기존 호가보다 보증금을 4000만원 더 올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신씨와 집주인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새 임차 희망자가 4000만원을 더 주고 덥석 매물을 채갔다. 신씨는 “전세 매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보증금을 더 주고라도 계약해야 했다”며 후회했다.
가을 '전세대란' 현실화…매물 줄고 가격은 급등

서울 전세가격 ‘부르는 게 값’

우려했던 가을 이사철 전셋값 급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전세 매물 자체가 거의 없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다. 하루 만에 3000만~4000만원씩 전셋값을 올려도 시장에 나오는 즉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학군 교통 등의 생활 인프라가 좋아 임차 수요가 많은 강남·서초·송파구 강남3구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학원가가 가까운 강남구 대치동 ‘쌍용대치’ 전용면적 128㎡ 전세는 지난 3일 11억원에 계약됐다. 지난달 직전 거래액은 8억원으로, 한 달 새 3억원이나 올랐다.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 전용 79㎡도 전셋값이 직전 6억7500만원에서 이달 8억5000만원으로 뛰었다. 역대 최고가다. 현재 호가는 9억원에 달한다.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전용 84㎡는 이달 들어 전셋값이 12억원까지 올랐다. 현재 이 주택형은 시장에 남은 전세 매물이 ‘제로(0)’다. 잠실동 J공인 관계자는 “이번에 전세 계약을 하면 4년 동안 보증금을 올릴 수 없다는 생각에 집주인들이 직전 전셋값보다 수천만원~1억원 이상 높게 부른다”고 말했다.

마포·용산·성북 등 강북지역에서도 전셋값 상승세가 가파르다. 마포구 대장주로 꼽히는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4단지 전용 84㎡는 이달 초 9억원에 전세 계약서를 쓰며 기존 최고가 8억3000만원을 넘어섰다. 마포구 공덕동 공덕1삼성래미안 전용 84㎡ 전셋값도 이달 6억900만원을 기록하며 신고가를 새로 썼다. 이 단지의 직전 최고가는 지난 7월 5억6000만원이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전용 95㎡ 전세 실거래가도 이달 최고가인 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최고가(6억5000만원)보다 5000만원이나 올랐다. 은평구 구산동 경남아너스빌 전용 63㎡의 7월 전세가는 3억7000만원이었는데 이달 4억3000만원으로 상승했다.

고공행진 당분간 지속

현장에선 전세 최고가가 잇따르고 있지만 거래량 급감으로 평균 실거래가는 낮아졌다. 직방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6월 평균 4억8282만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뒤 7월 4억5742만원에 이어 지난달 4억1936만원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하락세는 전세 거래가 급감한 데 따른 착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강남 등 인기 지역과 신축 전세 거래량이 줄면서 평균 전셋값이 하락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감정원의 서울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은 6월 0.24%, 7월 0.45%, 8월 0.65%로 오름폭을 키워가고 있다. 서울 전세 거래량은 6월 1만1360건, 7월 1만564건, 지난달 6548건으로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서울 전셋값 고공행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에 남은 입주 물량은 약 1만 가구며, 내년은 2만5000가구다. 2018년 3만3723가구, 2019년 4만6220가구에 비해 크게 감소한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임대차법 시행에 가을 이사철이 겹쳤는데 입주까지 줄어 얼마나 더 상승할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 청약을 기다리는 수요도 수급 불균형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 빅데이터랩장은 “청약을 위해 전·월세를 유지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 전셋값을 올리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은지/신연수/임유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