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세부안 발표를 앞두고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할 처지에 놓인 주택업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2일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세부안 발표를 앞두고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할 처지에 놓인 주택업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주택업계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방침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신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중단되면서 일감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데다 기존에 진행 중인 자체 개발 사업장의 수익성도 크게 떨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전세가격 상승, 아파트 공급 축소, 주거상품의 질 저하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제도 도입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작용 예상 뛰어넘을 것”

주택업계 "분양가 상한제 부작용이 더 크다"
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시행 시기와 내용을 담은 세부안을 12일 발표한다. 개정안에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을 수정하는 안이 담길 예정이다.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 2배 초과’인 기존 요건을 ‘물가상승률 1~1.5배’로 낮추는 안이 유력하다. 적용 대상 지역을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으로 한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을 ‘법 시행 후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는 단지’로 통일하는 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로서는 소급적용을 받는 셈이다.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뒤 일반분양을 준비 중인 서울 시내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100여 곳,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에만 30여 곳에 이른다.

한국주택협회는 이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 시장 안정화를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주택시장에 접근해야 한다”며 “과거 분양가 통제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밀어내기 물량이 나올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 공급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팀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가 소급 적용되면 관리처분계획을 바꾸기 위한 협의와 총회를 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며 “조합원 분담금이 크게 증가하면 사업을 포기하는 단지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 대부분의 공급이 정비사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집값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택업계 "분양가 상한제 부작용이 더 크다"
2007년 9월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적용된 이후 4년간(2008~2011년) 연평균 민간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28만 가구로, 직전 4년(2003~2007년) 연평균 인허가 물량(37만 가구)에 비해 24.3% 감소했다. 공공부문도 같은 기간 16.0% 감소하며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아파트 시장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처방”이라며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해 신규 아파트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셋값도 내년부터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택업계는 전망했다. 로또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무주택자들이 대거 전세로 눌러앉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전셋값 불안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강남 4구의 전셋값은 이번주 0.08% 오르며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강남 집값 잡으려다 애먼 강북 사업장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개발 사업장 51곳 중 49곳이 강북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집값 안정 효과 등 실효성은 검증되지 않은 반면 시장 전반에 가져올 부작용은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며 “경제 상황이 안정화될 때까지 제도 도입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경기 위축 불가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서울 주요 정비사업을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 대형 건설사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주택사업 비중이 큰 GS건설의 경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7월 말 기준으로 올해 공급계획(2만8837가구)의 30%를 채 달성하지 못했다. 현대건설, 삼성물산의 상황도 비슷하다. 강남권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리수’를 뒀던 사업장에선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해당 사업장에선 일반분양가 하한선을 확정해 계약했는데,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차액이 건설사 손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방 대도시 정비사업을 많이 수주한 중견·중소 건설사들도 좌불안석이다. 대전 대구 광주 등 지방 대도시도 언제든 규제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3기 신도시 발표로 2기 신도시 택지 미분양 우려가 커져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며 “분양가 상한제까지 시행되면 주택경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으면서 내수 경기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