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 각종 법안 자료와 정부 부처별 성과보고서, 결산 보고서가 쌓여 있다.  /김범준  기자  bjkim@hankyung.com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 각종 법안 자료와 정부 부처별 성과보고서, 결산 보고서가 쌓여 있다. /김범준 기자 bjkim@hankyung.com
여권의 ‘조국 지키기’에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 법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원격의료 도입 등 지지층의 반발이 심한 민감 법안의 처리는 포기 상태다. 그 대신 총선을 앞두고 표심(票心)을 잡기 위한 각종 ‘퍼주기 법안’이 우선 처리 대상에 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24일 “제한적 원격의료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20대 국회에선 제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포기 의사를 밝혔다. 복지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내년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시민단체 등의 반발까지 무릅쓰며 전선을 넓힐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국 지키기'에 경제는 뒷전 밀렸다
원격의료 도입 불발로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통과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이 법안은 유통, 의료, 관광 등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모법(母法)으로 2011년 발의됐지만 8년째 국회에 막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데이터산업 육성을 위한 ‘빅데이터 3법’도 개인정보 보호 논리에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후 여론이 악화되면서 지지층의 분열을 막는 게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속을 다지면서 젊은 층과 농민의 표심을 얻기 위한 농업소득보전법, 청년기본법 등의 법안 처리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내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은 논의를 중단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시행 시기를 2021년으로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원내지도부는 그러나 검찰개혁 등에 관한 논의가 먼저라며 논의를 보류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여당이 그동안 경제활성화와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겠다는, 말로만 주장하는 거짓 약속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조국 감싸려 규제개혁 팽개친 與…대통령이 당부한 '원격의료'도 포기

올 들어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 276개 중 경제 활성화·규제개혁과 관련한 법안은 12개(4.3%)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정부·여당이 요구하고 야당이 반대한 쟁점 법안은 다 빠졌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여권이 ‘조국 지키기’에 화력을 집중하면서 쟁점 법안의 통과는커녕 경제 활성화 법안의 논의 자체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조국 지키기'에 경제는 뒷전 밀렸다
여당 정책의총서도 ‘조국’만 논의

24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지지층의 반발이 없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방안을 제외하고 경제 관련 이슈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경제계에서 요구한 주 52시간 근로제 유예 논의도 빠졌다. 대신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대응 방안과 검찰개혁 등이 주로 논의됐다.

최근 여야 원내 지도부 간 협상에서도 경제 관련 이슈는 사라졌다. 정기국회가 ‘조국 청문회 2라운드’가 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여당의 ‘철통방어’만 보인다. 세부 법안을 다루는 국회 각 상임위원회는 조 장관과 관련된 증인 채택 문제를 두고 열흘째 실랑이 중이다. 민주당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협상에서 증인 채택 공방만으로 시간을 다 보내 법안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민생 국회’를 강조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민주당의 한계도 뚜렷하다. 민주당의 ‘정기국회 주요 입법과제 및 추진방향’에 따르면 정기국회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점 처리 법안이라고 정한 것들은 대부분 야당과 경영계에서 규제 법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이 대표적이다. 가맹사업법과 대중소기업 상생법 등도 민주당과 기업이 받아들이는 온도 차가 크다.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이원화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중점 처리 법안에서 아예 빠졌다. 민주당 내부에선 “‘조국 정국’으로 어차피 쟁점 법안 통과가 어려우니 지지층이 좋아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게 낫다”며 “되면 좋고, 안 돼도 야당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한 비문(非文·비문재인) 의원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보수 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을 중점 법안이라며 밀어붙이는 건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며 “원내 지도부가 일이 되게 해야 하는데, 안 되는 쪽으로 방향키를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민생’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결국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민생’ 외치지만…

1년 넘게 민주당 중점 처리 법안 맨 꼭대기에 있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서발법)은 정기국회 통과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여당은 그동안 “서발법에 보건·의료 분야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의료법 등을 고치는 ‘핀셋 입법’을 하겠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지층의 반발로 원격의료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와 연계된 서발법도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해법은 서발법에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하는 것인데 민주당은 아직까지 의사가 전혀 없다”며 “결국 여야 간 공방만 오가다 이번 국회를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 도입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7월 경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처음 언급했다. 군 부대 및 섬, 산골 마을 등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올 4월 우즈베키스탄 순방에서 재차 논의를 당부했지만 지지층 반발을 의식해 법안도 발의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1년 가까이 법안 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빅데이터 3법’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 이용 규제를 완화해 빅데이터산업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중 모법(母法)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오는 27일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실 관계자는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법이나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 등에 밀려 여당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며 “아직 여당 내에서도 반대하는 의원이 있는 등 내부 단속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섭/김소현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