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18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가 열린 대구 엑스코 앞에 대형 태극기가 깔렸다. 이번 전당대회는 ‘태극기부대’가 적극 개입하면서 과격 양상을 띠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18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가 열린 대구 엑스코 앞에 대형 태극기가 깔렸다. 이번 전당대회는 ‘태극기부대’가 적극 개입하면서 과격 양상을 띠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컨벤션 효과는커녕 흥행 참패를 예고하고 있다. 후보자들의 도를 넘은 막말 경쟁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둘러싼 과거사 논쟁까지 가세하면서 “당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두 차례 연 합동연설회는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극우파들이 행사장을 점거하다시피 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미래 논쟁은커녕 과거에 발목잡혀

한국당의 2·27 전당대회는 정당사에서도 보기 드문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선이 다가올수록 각 후보들의 공약을 놓고 치열한 토론이 오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현역의원 상당수 후보가 예비경선 도전을 아예 포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전당대회 시기 연기 요구’를 중앙당이 받아들이지 않아서이지만 내막은 황교안 후보가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황 후보는 경선이 시작된 후 TV 토론 등에서 민감한 현안에 즉답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며 ‘상처입지 않기’를 전략으로 정한 듯 치열한 논쟁 없이 임해 토론 자체가 싱거워지는 분위기다.

전당대회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원인은 크게 △5·18 발언으로 야기된 극우 논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당성 시비 △막말성 발언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 8일 당권주자인 김진태 후보가 국회에서 주최한 5·18 관련 토론회가 한국당을 극우 논쟁의 늪에 빠트렸다. 김 후보 징계가 전당대회 이후로 미뤄지면서 김 후보를 지지하는 강성 우파세력인 ‘태극기부대’ 등이 합동연설회장을 장악하고 반대 세력에 욕설과 고성을 지르는 ‘훌리건’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전당대회에서 차기 리더십이 어떻게 구현될지 ‘미래’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정당성 논란이 새삼 다시 불거진 것이다. 황 후보가 지난 19일 TV조선 주최 토론회에서 “객관적인 진실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성을 물어 탄핵 결정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해 기름을 부었다.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우리 모두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발언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한 후보는 세 명 중 오세훈 후보뿐이었다.

다음날인 20일 채널A 주최 토론회에서도 ‘과거지향형’ 논쟁은 여전했다. 황 후보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무효주장 논란에 대해 “헌재 결정은 존중해야 하지만 (재판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오 후보는 이 자리에서 “태극기부대가 전혀 컨트롤(통제)이 되지 않고 있다. 김진태 후보는 태극기 세력에 얹혀가며 당을 망가뜨린 마이너스 후보”라고 쏘아붙였다. 김 후보는 “그분들은 나라 걱정에 자발적으로 (행사장에) 나왔다”며 “다음 행사부터는 격조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받아쳤다.

‘막말 경쟁’으로 전락한 전당대회

전당대회에서 ‘도를 넘은’ 발언이 쏟아진 것도 전당대회를 외면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김준교 청년 최고위원 후보는 지난 18일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이냐. 민족 반역자로 처단하자”고 말했다. 그는 20일에도 “19대 대선은 원천 무효이고 문재인은 현직 대통령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가뜩이나 ‘대선 불복’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런 발언까지 나오면서 더불어민주당에 공세의 빌미를 줬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당이 그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등 굵직한 전국단위 선거에서 연거푸 패했음에도 제대로 당의 취약점을 짚어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성과 청산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정체성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 “지금과 같은 과거 지향적 이슈로 싸우게 되고, 각 후보 간 세력화 싸움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는 “당 지도부가 막말을 제어하지 못하는 무능을 보이면서 극성 지지자들이 행사장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