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부가 주요 대기업 사장단을 불러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을 압박해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는 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간담회라고 설명했지만 기업들은 “사실상 출연 강요”라며 “결국 국회 요구를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난감해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15일 국회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에 따른 농어촌과 민간기업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에선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국회에선 농해수위 소속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위원장)과 경대수 자유한국당,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여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기업에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SK 등 4대 그룹을 포함해 15개 주요 대기업의 사장급 임원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 고위임원도 호출당했다. 상생협력기금은 2015년 한·중 FTA 국회 비준으로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농수산물 생산·유통사업 등을 지원한다며 경제단체와 기업들을 닦달해 마련한 제도다.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간담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지난 2년 동안 자율에 맡겼지만 기금이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며 기업들을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상생협력기금은 지난 2년 동안 505억원이 모였다. 이 중 민간기업 출연액은 35억원(6.9%)이다. 대부분 정부가 대주주인 공기업·공공기관(470억1000만원)에서 나왔다. 간담회를 주도한 정운천 의원은 “지금까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쌀값을 낮은 가격에 유지시키는 등 농민을 압박한 결과”라며 “이제는 기업이 나서서 농촌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개호 장관은 “상생협력기금은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하지 않는 대가로 경제단체들이 먼저 출연을 약속했다”며 “취지를 이해하고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의원들은 모두발언에서 기금 출연이 자율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비공개로 전환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 의원은 구체적인 출연 계획을 내놓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자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 보고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당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재단 등에 출연한 기업인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기금 출연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 나온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정감사 이후 정치권 인사가 회사에 찾아와 여러 차례 출연 계획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며 “스마트 스쿨 등 구체적인 사업까지 제시하면서 참여를 요구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김우섭/박종필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