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관 60명, 치매 안심 센터 34명, 자살 예방 7명, 폐기물 시료 채취 5명, 가야 문화권 조사 3명….’

경상북도가 올해 행정안전부에 요구해 승인받은 공무원 증원 내역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현원이 2만5983명인 경북은 올해 439명의 공무원을 더 뽑았다. 작년 공무원 증원 인원(20명)의 21배가 넘는 수치다.
[단독] 영화관 운영·동물 구조까지 "일단 뽑고 보자"…'철밥통' 확 늘린 지자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현 정부의 ‘공적 일자리 늘리기’에 편승해 앞다퉈 공무원 숫자를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공무원 증원 바람이 재정 낭비와 민간 일자리 감소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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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사진)이 12일 행안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시·도별 공무원 증원 반영 현황’에 따르면 제주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는 올해 5489명의 공무원을 증원했다. 지난해 채용 인원보다 5000명 넘게 더 뽑았다는 의미다. 이들 지자체의 작년 공무원 증원 숫자(237명)의 23배가량 된다. 김 의원은 “정권이 바뀌면 공무원이 대폭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올해처럼 막대한 증원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공무원 증원 인원은 762명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의 증원 규모가 1266명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았고, 서울(512명), 경남(467명), 경북(439명), 전남(364명), 부산(321명), 충북(317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수치에는 소방·사회복지 공무원이 빠져 있다.

인천은 치매 안심 센터 운영과 아동 보호, 4차 산업혁명 지원 등의 명목으로 지난해 312명의 공무원을 더 뽑았다. 전북도 자살 예방, 공공 도서관 운영 등에 186명을 늘렸다. 광주는 5·18 진상 규명과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 야생동물 구조 센터 등을 위해 236명을 증원했다.

지난해보다 증원 규모가 170배 늘어난 서울시는 구체적인 채용 분야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김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도 “공공 안전과 사회복지, 문화, 환경 등 증가하는 행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증원”이라고만 했다. 행안부도 구체적인 설명 없이 “지역 현안의 수요를 바탕으로 증원을 승인했다”고만 둘러댔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행정 수요가 이렇게 급증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대다수 지자체가 목적도 불분명한 증원을 행안부에 묻지마 식으로 요구해 승인받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인구(지난해 972만1190명)는 지난 10년간 계속 줄어들었다.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전북, 전남 등 6개 광역자치단체 인구도 매년 감소 추세다.

“중앙정부에 부담 떠넘겨”

전문가들은 무리하게 공무원을 늘리면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가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자립도(전체 세입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가 낮은 지자체의 공무원 증원은 필연적으로 중앙정부에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직 공무원의 급여 대부분은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보내는 지방교부세에서 충당한다. 2013년 35조5359억원이던 지방교부세는 올해 45조9777억원으로 30% 가까이 급증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도 “중앙정부에서 교부금을 받아 공무원 월급을 주는 지자체가 증원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없으니 제약 없이 공무원을 더 뽑으려 하는 것”이라며 “공무원 집단의 전형적인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서울(86.39%)과 세종(73.58%), 경기(70.66%)를 제외한 14개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60%를 밑돌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32.04%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은 전남은 공무원 증원 인원을 작년 12명에서 올해 364명으로 29배 넘게 늘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원을 확충하기보다 부처 간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공직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