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단 뒤편으로 4인 가족의 삶이 그려진 자료를 띄워 지급 대상이 확대된 출산급여와 아동수당 등을 설명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단 뒤편으로 4인 가족의 삶이 그려진 자료를 띄워 지급 대상이 확대된 출산급여와 아동수당 등을 설명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잘살자는 꿈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함께’라는 꿈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포용국가’의 비전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포용이라는 단어를 19번, 포용국가는 9번 사용했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한 번밖에 쓰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문재인 정부의 기존 정책 축을 유지한 채 ‘분배’에 더욱 주안점을 두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문재인 대통령 “양극화 해결책은 포용국가”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 서두부터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가 가야 할 길이며 우리 정부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설에서 가장 방점이 찍힌 부분이다. 포용국가는 이번 정부가 지난 9월 양적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범사회분야 비전이다. ‘강자만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닌,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3대 비전·9대 전략이라는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 문 대통령의 핵심 정책 참모인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이 6개월가량 밑그림을 그렸다. 소득보장, 공평한 분배, 지역균형 발전 등이 로드맵의 골자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해외 순방 때마다 ‘포용국가 선언’을 알리며 강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 9월 유엔 총회 연설은 물론 지난달 유럽 순방에서도 포용국가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을 각국 정상 앞에서 강조했다. 이날 연설에서도 “이미 세계은행·IMF(국제통화기금)·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와 나라가 포용을 말한다”며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포용도 같은 취지”라고 설득에 나섰다. 성장에 치중하는 동안 양극화가 극심해진 탓에 발전된 나라 가운데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불평등이 그대로 불공정으로 이어지고, 불평등·불공정이 우리 사회 통합을 해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며 “역대 정부도 그 사실을 인식하며 복지를 늘리는 등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지만 커져가는 양극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성장방식을 답습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해석된다.

◆2년째 ‘큰 정부’ 강조하지만…

경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경고음과 경제 수장 교체설 등에도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축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야당과 경제계가 제기하는 정책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경제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고령층 등 힘겨운 분도 생겼지만 ‘함께 잘살자’는 노력과 정책 기조는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성과를 낼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최근 만난 청와대 경제 참모들은 “과거의 방식으로는 양극화가 심해질 뿐만 아니라 이전 대기업 중심의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날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물은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바다로 흘러가는 법”이라고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더불어 잘사는 국가가 되기 위한 해법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한 큰 정부 역할론’을 제시했다. 지난해 시정연설에 이어 또다시 ‘큰 정부’의 필요성을 언급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무역분쟁,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세계 경기가 내리막으로 꺾이는 등 대외여건도 좋지 않다”며 “재정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라고 밝혔다.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서 ‘재정이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예산’으로 편성했다는 설명도 더했다.

재정 여력이 있다면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주장이지만 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으로 올해보다 22% 증가한 23조5000억원을 배정했다. 가계소득을 높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예산을 대폭 늘리는 한편 의료·주거·교육 등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을 올해 11조원에서 12조7000억원으로 늘렸다. 이를 두고 청와대 측은 “시급한 일자리 등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퍼주기식 정책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자칫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의 펀더멘털(기본체력)을 바꾸는 데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