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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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 제도 시행에 따른 인력 873명, 수용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 인력 699명….’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작년 6월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2018년도 법무부 소요 정원 요구안’에 담긴 내용이다. 정원이 2만1825명(올해 8월 기준)인 법무부는 이 요구안을 제출하면서 올해 총 1만589명(정원의 48.5%)의 공무원을 뽑게 해달라고 했다. 정부 부처의 공무원 증원 계획을 심사하는 행안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이렇게까지 공무원 숫자 늘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도 넘은 막무가내식 공무원 증원 요구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14일 행안부로부터 받은 ‘2018~2019년 부처별 정원 요구·반영 현황’에 따르면 52개 정부 부처는 올해와 내년에 각각 5만7613명과 3만6152명의 공무원을 늘리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4년간 각 부처가 요구한 공무원 증원 규모(12만435명)의 77.9%에 달하는 수치다.

정원이 2만364명인 국세청은 2년간 인천지방국세청 신설과 탈세 감시 활성화, 소규모 주택 임대소득 전면 과세 시행 등을 명목으로 정원의 40%에 가까운 7912명의 증원을 요구했다. 정원 3348명의 복지부도 이 기간 2556명을 더 뽑게 해달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 등을 감시하는 근로감독관 3000명과 외부에 위탁하던 취업지원프로그램 상담직(1800명), 고용센터(700명) 등 무더기 증원을 요청했다. 근로감독관은 올해 452명 증원해 현재 1900명 수준인데 당초 계획대로라면 4300여 명까지 늘리려고 했던 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 현장에서는 검찰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근로감독관”이라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여 놓고 기업들이 잘 지키는지 단속하려고 대규모 증원을 요청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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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1명 늘면 민간 일자리 1.5개 줄어”

행안부가 지난 2년간 실제 승인해준 공무원 증원 인원은 각 부처 요구 인원의 25.2%인 2만3614명이었다. 이 수치 역시 박근혜 정부 초기 2년간 공무원 증원 규모(1만922명)와 비교하면 116.2% 급증한 것이지만, 각 부처의 요구 인원에 비해선 턱없이 적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대다수 부처가 자신들이 원한 만큼 증원 승인이 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무턱대고 많은 인원을 적어 냈다”며 “많이 써낼수록 더 많이 승인받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틈을 타 대다수 부처가 묻지마식 공무원 증원을 요구하는 뻔뻔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의 공무원 숫자 늘리기 바람이 재정 낭비와 민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무리하게 공무원을 늘리면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가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게 첫 번째 우려다.

김 의원은 “공무원을 한 번 뽑으면 60년간 임금과 연금을 줘야 한다”며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은 결국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퇴직연금 수급자 가운데 공무원 재직 기간이 30년 이상인 사람의 비중은 68.3%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해 사망한 퇴직 공무원의 퇴직연금·유족연금 평균 수급 기간(27.9년)까지 더하면 공무원 한 사람에게 60년에 가까운 기간 돈을 줘야 한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무원을 한 명 늘릴 때마다 민간 일자리가 1.5개 줄어든다는 통계(경제협력개발기구 추산)도 있다”며 “정부 부처가 이를 뻔히 알면서도 이기적인 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공무원 숫자를 늘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도 “경제난을 겪고 있는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의 공통점이 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린 것이었다”며 “인원을 확충하기보다 부처 간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공직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헌형/백승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