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일 국정감사에 국내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들과 주요 대기업 임원을 증인으로 줄소환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관련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과 달리 민간인 신분인 ‘일반증인’은 국감 출석이 의무는 아니지만 국회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뒤따를 후폭풍이 두려워 증인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회 관계자는 “사안별 쟁점은 대표들보다 실무자급 임원들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누구든 봐주기식 국감은 안 된다’는 강성파 의원들의 목소리에 밀렸다”고 설명했다.
농어촌상생기금 안냈다고…기업인 '팔목 비트는' 국회
◆野 “대표이사들 불러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이동통신사·휴대폰 단말기 제조사의 실무자급을 증인으로 부르려던 계획을 접고 대표이사급 증인들을 대거 채택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강하게 요구해서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이 “왜 각 기업 대표들을 부르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노웅래 위원장이 “대표이사들이 나오는 게 맞다”고 동조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모바일 부문 부사장을 부르기로 했던 과방위는 결국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과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황창규 KT 회장 등 주요 단말기 제조사 및 이통사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단말기 가격,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업체들은 예상하고 있다.

과방위 한국당 간사인 정용기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되면서 여야가 간사 협의를 다시 했다”며 “기업 대표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증인 채택을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비치는 것은 전체적으로 국감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돼 증인을 재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증인 선정 여부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다루고 있는 과방위에선 핵심 쟁점이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국감에서 증인 채택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이해진”이라며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이 (과거) 네이버 부사장이었다. 네이버 실질적 오너인 이 책임자도 증인으로 채택해 포털의 횡포를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드루킹 의혹 규명을 위해 한국당이 줄기차게 증인 선정을 요구했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여당 반대로 명단에서 제외됐다.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 한국지사 대표들도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존 리 구글코리아, 데미안 여관 야오 페이스북코리아, 브랜든 윤 애플코리아 대표가 대상이다. 이들은 국내 업체에 비해 국내 통신망 이용 대가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700억원대, 카카오는 350억원대의 망 사용료를 냈다. 반면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과방위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들에는 망 사용료, 세금 납부 등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농어촌기금 출연 적다고 국감 호출

대기업과 무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기업 증인들을 대거 신청한 것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농해수위는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 서경석 현대자동차그룹 전무, 장동현 SK 대표 등 5대 그룹 핵심 관계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피해를 본 농어민에게 자녀 장학사업, 현지 복지시설 설치 등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조성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대기업들의 출연 실적이 미미하다는 것이 이유다.

당시 정부는 매년 민간으로부터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걷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1년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모금액은 378억원에 그치고 있다. 373억원은 공기업이 냈고 4억원 정도만 대기업 출연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해수위 관계자는 “이 때문에 농업계의 불만이 들끓었고 농촌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에게도 입김이 가해진 것으로 안다”며 “출연 실적이 아예 없으면 사장급을, 조금이라도 냈으면 전무급을 부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운천 바른미래당·김정재 한국당 의원은 FTA 혜택을 누린 민간기업의 기부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기업인 채택을 밀어붙였다.

정 의원은 “자발적 기부를 약속했던 대기업들은 막상 기금이 출범하자 외면했고, 정부 역시 독려할 의지가 없다”고 질타했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기부를 강요하고 기업이 이에 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또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산자위도 포스코 회장 등 증인 채택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이날 최정우 포스코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승인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허연수 GS리테일 대표이사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한국당은 최 회장을 대상으로 약 400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은 포스코에너지 연료전지 사업에 대한 고의 부실 운영 의혹과 관련해 질의할 예정이다.

이동걸 회장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와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해 명단에 포함됐다. GM 사태와 관련해선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과 임한택 한국GM 노조지부장도 참고인으로 채택됐다. 편의점 업체인 코리아세븐 정승민 대표이사와 GS리테일 허연수 대표이사는 편의점업계의 불공정거래 구조 개선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박종필/김주완/배정철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