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정상회담 준비위 첫 회의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왼쪽) 주재로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평양 정상회담 준비위 첫 회의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왼쪽) 주재로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5일 평양에 간 대북 특별사절단의 핵심 임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6일 방북 성과 보고는 이런 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판을 깨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구두 약속’을 확인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 조건으로 요구해온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선 ‘행동 약속’을 받지 못해서다.

◆김정은의 대미 메시지 관심

정 실장이 이끈 5명의 대북 특사단은 출발 이전부터 신중한 조율을 거쳤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서로가 한 발 양보할 수 있게끔 ‘창의적인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받았다. 일단 미·북 간 대화를 지속시키는 데 주력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한·미 간 의견 조율도 긴밀하게 이뤄졌다. 김대중(2000년), 노무현 대통령(2007년)의 평양 방북 때만 해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과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이 대립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사단 방북 하루 전인) 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보낼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문 대통령에게 북한과 미국 양쪽을 대표하는 수석협상가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구두 약속' 받아온 특사단… '폼페이오 재방북' 이끌어낼까
정 실장이 “지금 단계에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 보내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다”고 소개한 것도 특사단을 통한 ‘문(文)의 중재외교’가 효과를 발휘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요청하는 등 비핵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포함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난도 외줄타기’ 중재외교

특사단의 방북 성과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낙관론자들은 이전 북핵 위기 때와는 전개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남한의 참여를 막고, 미국과 협상을 벌이는 전략)’을 고집하곤 했다.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막판에 뭔가를 얻어내는 전술을 써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계획을 취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대북 특사단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면 좋겠다”고 밝히는 등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정은이 ‘이남통미(以南通美: 남한을 활용해 미국과 대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 역시 우리 정부로선 고무적인 일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단순히 중재자가 아니고 비핵화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잠재적인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의 의미와 단계별 비핵화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 등에서 한·미 간 마찰이 커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 실장이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이고, 관련국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언급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김정은의 ‘셀프 비핵화’ 대가로 “한낱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도 못 하냐”며 미국을 비판해왔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살라미식 협상(주요 단계마다 잘게 쪼갠 카드를 하나씩 내놓으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내비친 것도 향후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 실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은 동시행동 원칙이 준수된다면 좀 더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을 필두로 한 미국의 대북 강경파는 이와 같은 ‘팃포탯(Tit for Tat: 주고받기식 협상)’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날 미국 국무부는 북한 철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계획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이행을 촉구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국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모든 국가가 북한의 불법적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전했다.

박동휘/이미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