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카드 꺼낸 북한
'평창 이후' 한반도 정세 산 넘어 산

한국 '핵 동결 후 관계개선 통한 비핵화' 추진
미국 '비핵화가 대화의 전제조건' 강경 입장 고수
문 대통령, 북·미 동시에 만족시킬 카드 제시해야
< 쇼트트랙 경기장 찾은 文대통령 - 펜스 美부통령 >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예선경기 관람 도중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쇼트트랙 경기장 찾은 文대통령 - 펜스 美부통령 >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예선경기 관람 도중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 요청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뜻대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운전석에 올랐지만 남북 대화와 비핵화에 관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묘수를 찾기 쉽지 않아서다.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와 북한의 대화 공세를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남북회담에 응하면 오히려 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미 연합훈련 재개 여부가 ‘한반도 운전자론’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평양회담’ 성사까지 험로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놓고 별다른 갈등을 보이지 않았다. 만경봉 92호의 방남과 남북 공동 스키훈련 과정에서나 대북 제재 대상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 방문에서도 큰 이견이 없었다. 모두 한·미 간 정책 공조와 정보 공유를 통해 가능했다. 백악관이 10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한 통일된 대응에 관해 한국 측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평창 대회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 남북 간 대화국면이 북·미 대화로 이어지려면 여러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주장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9일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은 뭔가’라는 질문에 “문 대통령과 나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길 원하지 않는다”며 “비핵화는 어떤 변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 옵션까지 강조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백악관 주변에서 북핵 시설을 제한적으로 타격하는 ‘코피 전략’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남북 대화가 비핵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도 ‘대화의 입구는 핵동결이며 대화의 출구가 비핵화’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비핵화라는 목표에선 미국과 같은 입장이지만 비핵화와 남북 대화에 대해선 미국과 온도차가 나는 셈이다.

김정은의 노림수는

전문가들은 비핵화에 관한 한·미 간 입장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고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은 한·미 간의 이런 틈을 파고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핵화에 좀 더 유연한 한국과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좀 더 유리하다고 김정은이 판단했다는 얘기다. 동시에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돌파구를 남북 대화로 찾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비핵화 약속 없는 남북 대화가 우선’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기 위해 남북 대화를 택했다”며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은 남북 대화에 대해 ‘알아서 잘 해보라’는 식으로 계속 관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북한의 상반된 입장은 1차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놓고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평창올림픽 이후 한·미 연합훈련을 하겠다고 밝혀왔다. 미국 역시 올림픽 기간이 지나면 연합훈련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향후 이산가족 상봉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명분으로 또다시 훈련 연기나 규모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북한이 그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을 완전히 없애거나 평창올림픽 때처럼 최소한 잠정 중단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문 대통령도 이런 점을 의식해 지난 10일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여정에게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말했다. 무리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가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해 국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만 하자고 하면 우리 정부가 매우 곤란해질 것”이라며 “결국 미국에 남북관계 개선이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설/이미아/김채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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