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인설
    정인설 금융부
  • 구독
  •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입니다.

  • [데스크 칼럼] 또 쪼개진 육군 방산 전시회

    한국 육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두 번 연속이다. 2024년에 이어 올해도 지상 무기를 알리는 육군 방산 전시회가 둘로 쪼개져 열리는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방산업계에선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차고 있다. 다만 무기를 사주는 최대 ‘큰손’인 육군에 찍히는 게 두려워 아무도 대놓고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권 다툼 끝에 분열그동안 국내 방산 전시회는 육·해·공군이 격년으로 열었다. 홀수 해엔 해군(MADEX)과 공군 전시회(ADEX)가 상·하반기에 각각 개최됐다. 짝수 해엔 육군 행사(DX코리아)가 막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2년에 한 번씩 육군과 해·공군 방산 전시회가 이어졌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방산 강국들도 이런 관례를 따르고 있다.그런데 한국에서 2024년부터 이 원칙이 깨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K방산이 내수 산업에서 수출 산업으로 발돋움한 때다. 글로벌 전시회로 흥행에 성공하자 행사를 주도해온 두 주체 간 밥그릇 싸움이 시작됐다. 한쪽은 DX코리아 주최사였고 다른 주체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성이 주축인 육군협회였다. 그동안 공동주최자 자격으로 수수료를 챙겨온 육군협회는 육군본부를 등에 업고 “행사 규모가 커진 만큼 수수료를 더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최사는 “그동안 적자를 감수하면서 행사를 해온 만큼 그럴 수 없다”고 맞섰다.결국 그해 9월 DX코리아는 단독으로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행사를 열었다. 육군협회는 불과 1주일 뒤 충남 계룡대에서 KADEX라는 명칭의 별도 지상군 전시회를 강행했다. 당시 육사 출신들이 KADEX에 힘을 실어주자 방산 대기업들이 대거 계룡대

    2026.01.27 17:47
  • [데스크칼럼] 정부가 보여준 노란봉투법의 민낯

    고대 로마시대 때 얘기다. 당시 석조 건축의 백미는 반원 모양의 아치형 다리였다. 수직 기둥에 상판을 그대로 얹는 직선형 다리보다 내구성이 좋았다. 벽돌을 아치 형태로 맞물려 쌓아 상판의 하중을 분산시킨 덕분이다. 대형 교량 건설에 적용할 수 있어 로마제국 영토 확장에 큰 도움이 됐다. 목숨을 건 설계자들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커다란 위험에 직면한다는 게 문제가 됐다. 아치 형태로 쌓아 올린 벽돌 자체 힘만으로 버틸 수 없어 다리 곳곳에 임시로 고정한 가설물을 빼는 시점이다. 이때 다리 설계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아치 밑에 서야 한다. 이른바 ‘진실의 순간’에 설계가 잘못됐거나 벽돌이 부실했다면 다리는 무너지고 설계자는 즉사한다. 설계자가 아치 밑에 서기를 거부한다면 그 다리에 결함이 있음을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의 설계가 옳다는 점을 목숨 걸고 증명한 것이다.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낙하산 포장병도 같은 처지였다. 그들은 낙하산을 공수부대로 보내기 전 직접 포장한 낙하산 중 하나를 택해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로마시대 다리 설계자처럼 낙하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입증했다. 동료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엄중한 책임감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블랙 스완’ 이론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는 이런 용단을 ‘스킨 인 더 게임’으로 묘사했다. 피부를 게임에 걸 정도로 자신의 결정과 행동으로 빚어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탈레브 관점에서 본다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떤가. 그동안 기업인들은 정부가 노란봉투법의 불확실성을 줄일 ‘

    2025.12.30 17:38
  • [데스크 칼럼] 얕은 기술 국산화의 함정

    전력을 증폭하거나 전류를 제어하는 전력 반도체는 전기 사용이 폭증한 인공지능(AI) 시대에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이제는 ‘산업 혈관’을 넘어 ‘에너지 뇌관’이라고 얘기할 정도다.AI 시대 이전만 해도 전력 반도체는 단일 원소인 규소(실리콘)를 원료로 사용했다. 고온·고압 환경에서 견디는 내구성이 약한 게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화합물 반도체가 고급 전력 반도체의 대세가 됐다. 대표적인 게 탄화규소(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이다.SiC 계열 반도체는 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반 ‘에너지 고속도로’ 등에 들어간다. GaN 계열은 무기용 국방 반도체로 쓰인다. 욜그룹에 따르면 이런 화합물 반도체 시장은 5년 내 현재의 두 배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증가율이 13%로 전체 반도체 산업(7%)의 두 배 수준이다. 격변 중인 전력 반도체 시장세계 각국이 화합물 반도체 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는 건 당연하다.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도 물량 공세와 인해전술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중국 기업이 올 들어 6인치 SiC 웨이퍼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추자 지난 7월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울프스피드가 파산했다. 대만 TSMC까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2027년 전력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손을 들었다.한국도 일찌감치 화합물 반도체 개발에 나서긴 했다. 세계 표준이 확립되기 전인 1992년부터 이 기술을 육성하려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거창한 목표만 제시했지, 의미 있는 예산을 투입하지 않았다. 메모리 강국 위상에 걸맞지 않게 전력 반도체 분야에선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이유다. 한

    2025.11.19 17:24
  • [데스크칼럼] 20년 후의 한국 반도체

    두 명의 장씨를 빼고 중국·대만 반도체 역사를 얘기하기 어렵다. 대만에 TSMC를 창업한 장중머우(張忠謀)가 있다면 중국 최대 반도체 영웅은 SMIC를 세운 장루징(張汝京)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두 사람은 각각 저장성 닝보와 상하이 태생으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를 거쳤다. 이 때문에 영어 이름인 모리스 창(장중머우)과 리처드 창(장루징)으로 더 많이 불린다. 중국·대만의 반도체 영웅이들은 큰 족적을 남겼다. 장중머우는 1987년 TSMC를 설립해 고객 주문대로 반도체를 제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개척했다. 20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2000년대 들어 반도체 후발국이던 대만을 사실상 파운드리 분야 절대 강국으로 만들었다.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를 넘어 이제는 ‘반도체업계의 제우스’로 불릴 정도다.장루징은 신격화된 장중머우와 척지며 성장했다. 1990년대 후반 대만에서 투자를 받아 스다반도체란 회사를 세워 웨이퍼 제조업에 뛰어들었지만, TSMC의 견제 속에 뜻을 펼치지 못했다. 급기야 1999년 스다반도체 대주주가 회사를 TSMC에 매각하면서 장루징은 큰 충격에 빠졌다.이때 손을 내민 곳이 중국 정부였다. 제조업 특급 인재 1000명을 귀화시키겠다는 ‘천인 계획’을 추진하던 때다. 장루징은 2000년 유소년기를 보낸 대만을 등지고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SMIC를 창업해 TSMC와 일전을 벌였다. 천하의 중국이라도 기술장벽이 높은 파운드리에서 별수 없을 것으로 봤지만 결과는 달랐다. 설립 20년 만인 2020년대 들어 SMIC는 글로벌 빅3 파운드리로 도약했다. 이제 장루징은 ‘중국 반도체의 대부’로 대우받고 있다.베트남에도 장루징급 대열에 오

    2025.10.14 17:31
  • [데스크 칼럼] 기업 대우가 너무 다른 두 나라

    베트남에 있는 한국 기업인이 들려준 얘기다. 지난달 베트남 북부에 역대급 폭우가 예고됐다. 예보대로라면 대규모 홍수로 강 주변의 모든 마을이 초토화될 가능성이 컸다. 이때 해당 지방정부는 “반드시 한 곳만은 살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바로 한국 기업들이 있는 장소였다. 그들은 “공장이 잠기면 우린 일자리를 잃고 돈을 벌 수 없다”며 주민을 설득했다.주민들이 수긍하자 해당 지방정부는 강줄기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공장 반대편에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강바닥 높이를 낮춰 홍수가 나더라도 강물이 공장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 것이다. 폭파 버튼을 누를 때 우는 주민이 있었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업 위해 강줄기 바꾼 베트남다행히 예보보다 강수량이 적어 홍수가 발생하지 않아 주민들도, 해당 기업도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 기업인은 “공무원과 주민 모두 기업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베트남에 진출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한국은 어떨까. 기업을 위해 강줄기는 고사하고 필수 인프라인 전력망 흐름조차 바꿀 수 없다. 가뜩이나 기업하기 힘든데 최근엔 기업 숨통을 더 조이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고용노동부 장관은 연일 “중대재해를 엄벌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이제 건설사들은 관급 공사나 고난도 공사 입찰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건드릴 때마다 세지는 상법은 어떤가. 소액주주와 투기자본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다 보니 한국에서 기업 경영권 위협은 상수가 될 전망이다.이런 상황에서 노란봉

    2025.08.28 00:13
  • [데스크칼럼] 패자부활 돕겠다는 중기부 장관

    한 해에 100만 명 이상의 소상공인이 망하는 폐업의 시대다. 신규 창업 대비 문을 닫는 자영업자 비율은 80%에 육박한다. 불황 탓에 사업을 접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그들을 받아줄 곳은 많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폐업자의 61.2%가 심각한 경제적 곤란을 겪는다. 43.8%는 재기할 엄두조차 못 내는 실정이다.패자 부활이 어려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소상공인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그는 “(소상공인이) 폐업 단계까지 가기 전에 상황이 안 좋으면 미리 조금씩 정리할 수 있게 데이터를 구축해 놓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회복 지원을 체계화해 폐업 이후 새로운 가게를 하거나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5%만 혜택받는 사회한 장관이 소상공인 부활을 위한 첫 단추로 질서 있는 폐업 방안 마련을 거론한 것은 적절한 상황 인식이다. 그간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은 캐비닛 속 옛 보고서를 재탕 삼탕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력·예산 부족을 핑계로 폐업자 지원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일쑤였다. 폐업 전 대비는커녕 사후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가 대표 사업으로 내세우는 ‘희망리턴패키지’는 폐업자 중 5% 남짓만 이용할 수 있다. 폐업자의 95%가 제도권 밖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무엇보다 큰 문제는 제대로 된 폐업 지원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임대차 계약 종료, 권리금 회수, 금융 채무 정리, 철거 협상 등을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벼랑 끝에 있는 폐업자가 이런 어려움을 혼자서 잘 해결할

    2025.07.27 17:32
  • [데스크칼럼] MBK 행보를 주시하는 이유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연이어 일본 기업을 인수하고 있어서다. 사모펀드가 일본 기업 경영권을 갖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는 일본에서 한국계 자본이 그런다는 건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 삼성전자가 일본 전자업체를 인수하려다 포기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상반된 한·일 내 움직임MBK는 일본 기류가 바뀐 것을 감지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해 초 노인 요양 서비스 회사인 히토와를 손에 넣은 데 이어 비타민 영양제로 유명한 아리나민제약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어 옛 후지쓰 자회사인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사 FICT를 사들였다. 자동차 부품사인 마렐리홀딩스와 빌딩관리 업체 JBRS 인수도 성공했다. 지난해에만 일본 기업 인수에 쓴 돈이 2조원에 달했다.한국 내 움직임은 다르다. 지난해 4월 의약품 유통사 지오영을 품에 안고 올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참전한 것 정도가 MBK 행보의 전부다. 올해 인수합병(M&A) 최대어였던 CJ제일제당과 SK실트론 인수전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최대주주로 있는 홈플러스와 롯데카드를 파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MBK의 한국 M&A 전략이 바뀐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홈플러스와 고려아연 사태로 MBK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지면 MBK가 주요 활동 무대를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길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MBK가 지난달 일본 공작기계 회사인 마키노후라이스제작소(마키노)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이런 분석에 더욱 힘이 실린다. 마키노는 세계 5위 공작기계 업체로 그동안 MBK가 경영권을 얻은 일본 내수 기업과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MBK가 계

    2025.06.18 17:47
  • [데스크 칼럼] 역대급 난세를 이겨낸 기업들

    장금상선이라는 해운회사가 있다. 대장금엔 비할 바도 안 되는 무명에 가까운 기업이지만 HMM 다음으로 큰 국내 2위 해운그룹이다. 더 놀라운 건 재계 순위가 KT&G, 코오롱, KCC보다 높은 32위(자산 기준)라는 점이다. 2019년 당시 국내 5위 흥아해운을 인수한 뒤 5년 만에 회사 덩치를 세 배로 키운 결과다.최근 한국 전통 산업군에서 장금상선처럼 단기간 내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10년 치 통계를 봐도 업종 자체가 뜬 바이오와 정보기술(IT), 가상자산 관련 회사들이 고작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흔하디 흔한 인수합병(M&A)이 고속 성장 비결의 전부는 아니다. 장금상선 창업주인 정태순 회장은 남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1989년 창사 이후 다들 돈 된다고 달려든 원거리 북미 항로에 눈독 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중국 해운사들 탓에 먹을 게 없다는 한·중 항로로 향했다. 중국 바닷길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한·중 합작사로 시작했다. 중국 양쯔강(장강)을 뜻하는 장(長)과 한국의 금수강산을 의미하는 금(錦)을 합친 장금상선이란 사명이 그래서 나왔다. 영문명도 중국과 한국을 섞은 시노코(sinokor)로 정했다.회사 이름대로 중국 사업을 고수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중국 측 파트너인 시노트랜스가 합작사에서 철수한 뒤에도 중국 항로를 버리지 않았다. 중국과 무역이 많은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했다. 근거리 해운의 절대강자로 우뚝 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북미 항로 일변도이던 한진해운이 망하고 현대상선(현 HMM)이 10년 가까이 적자를 내는 와중에도 이 회사는 끄떡없었다. 오히려 경쟁자가 줄면서 2000년 이후 줄곧 흑자를 내고 있다.

    2025.05.07 17:34
  • [데스크칼럼] 전기료발 산업 재편에 대비해야

    근래의 전기요금 인상은 한국만 겪은 게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어난 세계적 현상이다. 전기, 가스 할 것 없이 모든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대세가 됐다.공교롭게도 제조업 강국들은 탈원전이라는 우를 범해 위기를 키웠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이 원전에 등을 돌렸고, 독일과 대만 역시 원전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뜬금없이 한국도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대열에 합류했다. '설상가상'의 후폭풍설상가상의 후폭풍은 산업용 전기요금 급등으로 이어졌다. 원전을 모두 폐쇄한 독일에서 특히 심했다. 2022년 산업용 전기요금이 갑절로 오르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해 10월 세계 최대 화학 기업인 바스프의 마르틴 브루더뮐러 최고경영자(CEO)는 “(전기료 때문에) 독일에선 더 이상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바스프는 전기료가 저렴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인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등에 투자를 집중했다.비슷한 시기 독일 최대 가전 회사인 밀레와 난방 시스템 업체인 비스만도 자국 사업을 줄이고 폴란드로 향했다. ‘전기료발 엑소더스’가 확산하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독일 제조업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전기료 불만은 대만에서도 들끓었다. 2022년 이후 매년 전기료가 10% 이상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또다시 12% 올랐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수년간 대만 전기요금이 몇 배로 올라 우리가 진출한 국가 중 대만 전기료가 가장 비싸다”고 토로할 정도였다.한국도 산업용 전기료 폭탄에서 자

    2025.04.08 17:45
  • 디즈니 이긴 '너자2'의 흥행 이유…K애니의 현주소는? [정인설의 OK기업]

    중국의 ‘너자2’가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썼다. 중국 내 '애국소비'에 기댄 바 크다는 평가도 있지만, 역대 세계 1위 애니메이션 흥행작 기록을 갈아치운 건 엄연한 현실이다.문제는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자본과 거대 시장을 앞세워 급성장한 중국과 달리 한때 성장하던 한국 애니메이션은 고사 직전 위기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인설의 OK 기업'에서 C애니의 비상과 K애니의 위기에 관해 살펴봤다.원종환 기자 

    2025.03.08 13:08
  • [데스크 칼럼] 쇠젓가락의 힘을 믿습니다

    젓가락의 원조는 중국이다. 고대 은왕조에서 상아 젓가락을 쓰긴 했지만 대부분 대나무로 만든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 그래서 젓가락을 뜻하는 한자 ‘저(箸)’에는 대나무 죽(竹) 부수가 들어가 있다.‘젓가락 하면 나무젓가락’이란 공식을 깬 건 한국이다. 뜨거운 국과 고기를 많이 먹는 한국인에겐 고온과 무게에 약한 나무젓가락보다 쇠젓가락이 유용했다. 내구성이 강한 쇠젓가락은 운동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다. 나무젓가락보다 손뼈와 근육·관절을 더 움직이게 하고 두뇌 활동을 더 늘린다. 영남대병원 조사 결과 쇠젓가락은 나무젓가락과 포크에 비해 각각 1.6배, 2배 정도 뇌를 활성화했다. 또 쇠젓가락은 잘 미끄러져 콩 같은 작은 물체를 집을 때 나무젓가락보다 더 정교한 손기술을 필요로 한다. 손재주로 우뚝 선 한국한국인은 이런 고난도의 쇠젓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안다. 작은 밥알이나 미끄러운 메추리알, 물렁물렁한 묵까지 쇠젓가락으로 집어낸다. 포크만 쓰는 서양인 눈에는 경이로울 뿐이다. 나무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일본도 한국의 쇠젓가락 경쟁력은 인정할 정도다. 세계에서 쇠젓가락을 가장 많이 쓰는 한국이 악력 운동인 ‘총·칼·활’ 종목에서 세계 최고가 된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그렇다고 한국이 쇠젓가락을 오래전부터 쓴 건 아니다. 근대화 이전엔 구리와 나무젓가락을 혼용했고 현재의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퍼진 건 1970년대다. 공교롭게도 한국 제조업의 성장 시기와 맞물린다. 철강산업 발전으로 목재보다 철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던 때다. 쇠젓가락의 대중화와 함께 한국은 ‘철공예’라고 할 수 있는

    2025.03.02 17:29
  • [천자칼럼] LA 화재 불씨는 낡은 美 전력망?

    2021년 2월은 미국 텍사스 주민들에게 악몽 같은 시기였다. 대규모 정전으로 난방을 돌리지 못해 240여 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도 나흘간 지속된 정전으로 4000억원의 피해를 봤다.정전 원인은 추위에 취약한 전력망이었다. 겨울이 따뜻한 텍사스의 전선 피복은 미국에서 가장 얇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당시 영하 20도로 내려간 강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텍사스 전력망 중 절반가량이 먹통이 됐다. 게다가 다른 주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아 비상 전력을 끌어오지 못해 피해가 더 컸다. 이후 텍사스는 이른바 ‘전력망 겨울화’에 매년 50억달러 이상을 쓰지만 여전히 미국 정전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텍사스에 겨울이 고비라면 플로리다는 여름이 골치다. 매번 대형 허리케인이 상륙해서다. 2020년 ‘도리안’과 2022년 ‘이안’이 대표적이다. 그때마다 50년 이상 된 노후 전선이 끊기거나 송전탑이 무너져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다. 여기에 열대 폭풍과 고온까지 겹쳐 플로리다의 ‘여름 정전’은 일상이 됐다. 인근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도 비슷한 처지다. 대부분 1960년대 이후 교체하지 않은 노후 전력망이 정전 피해를 키운다. 이들 지역의 전력망 등급은 F로 미국에서 가장 낮다.캘리포니아 전력망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7일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의 발화점이 송전탑이라는 의혹이 나오면서다. 불이 난 LA 카운티의 산 중턱에 설치한 송전탑에서 불꽃이 솟구치는 영상이 연이어 공개되고 있다. 2021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도 낙후한 전력망에서 발생한 불꽃이 원인이었다. 2018년 캘리포니아 산불도 송전선

    2025.01.15 17:44
  • [천자칼럼] '트럼프 티켓' 구하는 기업들

    미국 대통령 취임식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행사 비용을 전액 세금으로 충당하는 한국 등과 달리 미국은 그 비용을 대부분 기부금으로 조달해 기부액이 얼마냐에 따라 취임식 규모가 달라져서다.이런 전통은 1949년 취임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쪼들리는 정부 재정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날로 화려해지던 취임식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꽃을 피웠다. 배우 출신답게 각종 공연을 총망라해 취임식을 문화 축제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만달러로 이전보다 갑절이 된 취임식 비용은 모두 기부금으로 충당했다.취임식 기부금은 계속 늘다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처음 1억달러를 넘었다. 이 기록은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가 다시 깰 전망이다. 지난주 기부금 잠정치가 1억7000만달러를 넘어서 취임식인 20일까지 2억달러는 무난할 전망이다. 돈이 너무 많이 모여 취임식 후 남은 돈은 ‘트럼프 도서관’ 건립비로 쓰기로 했을 정도다.취임식 기부금 개별 한도를 정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금액 제한을 없앤 덕도 있지만 흥행에 성공한 원인은 따로 있다. 이른바 ‘VIP 티켓’이 불티나게 팔려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비용으로 100만달러 넘게 기부하거나 200만달러 이상 모금한 개인·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취임식 때 특별석에 앉는 것 외에 트럼프 대통령 만찬과 JD 밴스 부통령 만찬 등 6가지 행사마다 각각 6장의 입장권을 받는다. 2017년 취임식 때 기부에 인색했던 미국 빅테크와 자동차 기업들이 이번엔 ‘100만달러 클럽’에 가입한 배경이다.미국 사업 때문에 어떻게든 트럼프 행정부와 인맥을 쌓아야 하는

    2025.01.13 17:32
  • [시사이슈 찬반토론] 서민금융 위해 대부업 규제 강화해야 하나

    정부가 대부업 요건을 강화했다. 대부업체가 과도한 수준의 이자를 받으면 대출자로부터 원리금을 아예 받지 못하게 하는 초강수를 뒀다. 불법 사금융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 서민들이 고금리 피해를 보는 걸 예방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대부업체를 옥죄면 합법적으로 영업하던 종소 대부업체마저 불법 사금융 영역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민들이 급전을 더 구하기 힘들어질 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부업 규제 일변도로 가는 게 능사일까. [찬성] 폭리 취하는 불법 사금융 근절…서민들 고금리 피해 예방 효과국회는 지난달 27일 불법 사금융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부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법은 하위 시행령 개정을 완료한 뒤 올 하반기부터 시행한다.개정 법안에는 대부업체가 법정 최고 이자율을 넘는 이자를 받으면 계약의 효력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회적 통념에 현저히 어긋나는 ‘반사회적 계약’이나 초고금리 대부계약을 맺으면 해당 계약은 원천적으로 무효화하게 했다. 예를 들어 대부업체가 연이율 60%를 초과하는 대부계약을 맺으면 대출자는 원금과 이자를 안 갚아도 된다. 성 착취 추심, 인신매매, 신체 상해, 폭행, 협박 등을 전제로 체결된 계약의 원리금도 전부 무효로 한다.정부는 특히 대부업 자기자본에 신경 썼다. 금융권 건전성 지표 중 하나인 자기자본은 스스로 금융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을 의미한다. 그동안 대부업 등록 요건인 자기자본 기준이 낮다 보니 신뢰할 수 없는 영세 대부업자가 난립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문제를

    2025.01.06 10:00
  • [천자칼럼] 안갯속 US스틸 운명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인수합병(M&A)을 막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다. 2015년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2018년 퀄컴 인수전이 대표적이다. 모두 중국 업체이거나 중국 자본이 참여한 M&A다. 자국 기업이 개입한 M&A를 막고 나설 때도 적잖다. 2017년 AT&T와 타임워너 합병, 2021년 엔비디아의 ARM 인수, 지난해 슈퍼마켓 크로거와 앨버트슨 간 합병 등이다. 독과점 우려가 커진다는 명분으로 미국 법무부가 총대를 멘다.그럼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자본이 끼어 있지 않고 독과점 우려도 크지 않아서다. 동맹국과의 공급망 강화를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의 그간 발언과도 배치된다. “경제적 자학 행위”(월스트리트저널)라는 비판도 나온다.US스틸은 상징성이 큰 기업이다. 1901년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JP모간 회장이 9개 철강사를 합쳐 US스틸을 세울 때 기업 가치가 10억달러로 미국 정부 예산의 두 배를 웃돌았다. 1943년엔 미국 철강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하며 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끄는 데 힘을 보탰다. 말하자면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공신이다.하지만 1960년대 이후 일본과 유럽 업체 공세 속에 내리막을 달려 한때 34만 명에 달한 직원이 2만 명으로 줄었다. 세계 1위인 조강량도 27위로 추락했다. 세계 4위 일본제철이 US스틸 주가(30달러)보다 80% 이상 높은 주당 55달러를 인수가로 제시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됐다.US스틸의 앞날은 다시 미궁이다. 업계에선 US스틸의 독자생존보다 경쟁 업체인 클리블랜드클리프스가 인수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이 회

    2025.01.05 17:14
  • [천자칼럼]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독일 헌법학자인 카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도덕이 선악의 구분이며 미학이 미추(美醜)의 대립이듯 정치의 본질은 피아식별이라는 것이다.한국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구조여서 내 이익을 침해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당리당략 앞에서 상대와의 대화와 협상은 뒷전이기 일쑤다. 정치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문제 해결 과정과 주체가 엉뚱한 곳으로 넘어간다. 한국에선 주로 사법부가 그 악역을 맡는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나오는 배경이다.대부분 헌법재판소가 해결사 역할을 담당했다.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감사원장 등 총 10건의 탄핵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1988년 이후 2023년까지 접수한 탄핵 사건(7건)보다 많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위헌법률심판과 권한쟁의, 헌법소원 등 다른 미제 사건도 1354건에 이른다.비정상적인 상황에 신임 재판관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제 취임한 조한창 헌법재판관은 “정치적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다수의 문제가 합의되지 못한 채 사건화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으로 어려운 일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사법의 정치화’도 못지않다. 판사들이 사법적 판단에 자신의 정치 성향을 투영하는 경향이 노골화하는 양상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늑장 판결에서 잘 드러난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1심 판결까지 4년 가까이 걸렸다. 유죄 판결 난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이 임기를 다 채운 뒤였다. ‘조국 사건’ 역시 1심에만 3년 넘게 소요됐다.윤석열 대통령 체포·압

    2025.01.02 17:53
  • [천자칼럼] Empty Korea(텅빈 한국)

    미국에서 장관이 되려면 한국보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지명했다고 무조건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아니다. 국회 동의 여부가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사실상 상원의원의 전원 찬성을 얻어야 한다.어렵게 임명된 만큼 고위직 탄핵도 쉽지 않다. 한국에선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해당 장관은 곧바로 직무정지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상원이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안을 최종 가결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해당 장관은 직을 유지한다. 탄핵 절차가 이렇게 까다롭다 보니 미국 역사상 최종 탄핵당한 장관은 한 명도 없다. 당연히 장관 대행으로 일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이에 비해 요즘 한국은 ‘대행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29차례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3건이 통과됐다. 수장 탄핵안이 가결된 법무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서울중앙지검 등이 대행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탄핵 여파는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재난 대응의 핵심 라인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4명이 모두 대행인 데다, 대통령 권한 ‘대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역할까지 맡았다. 무안공항 등 지방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사장 자리 역시 대행 체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임 사장이 올 4월 사임한 뒤 8개월째 후임 인선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비슷한 이유로 정부기관과 공기업 327곳 중 30여 곳의 사장이 공석이다.외교가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탄핵 정국 이후 인사 절차가

    2024.12.30 17:41
  • [천자칼럼] 여성 현역병 시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은 편지를 주고받기 힘들었다. 편지를 써도 편지를 본국에 전해줄 우편배달부가 부족해서다. 장기간 서신 왕래가 끊긴 병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미군 수뇌부는 군 사기 진작을 위해 1945년 유럽 전선에서 우편배달을 전담할 부대를 창설했다. 전례 없는 징병으로 젊은 남성이 모자란 탓에 부대원들은 855명의 흑인 여성 자원자로만 구성했다. 미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흑인 여성 대대였다. 6888대대로 명명된 이 부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을 발휘해 2년간 전장에 쌓인 수십만 통의 우편배달을 3개월 내 모두 처리했다. 당초 예상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였다.대만은 정부군을 창설한 1948년부터 여군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엔 저출생으로 남성 병역자원이 모자라 부사관과 장교뿐 아니라 일반 병사도 여성 지원자 비율을 늘리고 있다. 중국과의 갈등 고조로 모병제를 징병제로 바꾸고 남성 의무복무 기간을 늘린 뒤 젊은 남성층이 강하게 반발한 상황도 고려했다.우려한 것보다 여성 자원병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남성 의무복무병보다 월급이 50%가량 많고 복무 기간(4년)은 장교(5년 이상)보다 짧아 경쟁률이 10 대 1이 넘는다. 지난해부터 전역한 여군을 예비군 대상에 넣었는데도 여성 현역병 경쟁률엔 큰 변화가 없다.한국도 대만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까. 최근 대만 병역제 관련 보고서를 낸 국방연구원의 김영곤 연구원은 병역자원이 모자란 한국도 대만처럼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용하고 여성 현역병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앞서 올 4월 총선에서도 개혁신당이 이와 비슷한 ‘여성희망 복무제’라는 공약을 제시했다. 여

    2024.12.26 17:33
  • [천자칼럼] 로봇 산타

    로봇의 원조는 체코의 차페크 형제다. 형인 화가 요세프 차페크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로보타(robota)’에 착안해 인간처럼 말하고 걷는다는 개념의 로봇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뒤 동생인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 본인의 소설에 최초로 로봇을 등장시키며 세상에 알렸다. 그럼에도 차페크 형제는 비행기 원조인 미국의 라이트 형제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이들이 로봇 개념의 창시자일 뿐 인간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을 개발하지 못해서다.문학 작품에나 존재하던 인간형 로봇을 처음 개발한 것은 일본 혼다자동차다. 혼다가 2000년 내놓은 ‘아시모’라는 로봇은 스스로 두 다리로 걷고 계단까지 오르내려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도요타자동차와 중국 업체들이 앞다퉈 ‘2족형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 뛰어들어 일부 개발에 성공했지만 대량생산 단계인 상용화까지는 가지 못했다. 기술 수준이 낮은 ‘4족형 로봇’이 군사용이나 서비스용으로 세계에 보급된 것과는 대조적이다.휴머노이드 로봇에서 가장 앞서나간 것은 미국이다. 1990년대부터 세계 로봇 투자액의 60%가량을 쏟아부었다. 미국 국방부가 주축이 돼 보스턴과 실리콘밸리에서 첨단 로봇 개발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집중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테슬라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현대자동차가 2021년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13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인 뒤 매년 업그레이드판을 내놓고 있다. 어제는 기존 유압식에서 벗어나 전기로만 구동하는 ‘올 뉴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이 로

    2024.12.24 17:25
  • [천자칼럼] 공포의 '1인칭 시점' 드론

    1984년 개봉한 미국 영화 ‘최후의 스타파이터’는 외계인 간 전쟁을 어린이 게임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스타파이터’라는 아케이드 게임을 잘하는 청소년들을 전장에 투입해 외계인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2014년 나온 ‘드론 전쟁: 굿킬’은 외계인 대신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과정을 담았다. F-16 전투기를 몰던 주인공이 드론 조종사로 나가 게임하듯 목표물을 명중시킬 때마다 ‘굿 킬’(좋은 살상)이라는 찬사를 듣는다.두 영화는 게임처럼 바뀐 전쟁의 모습을 그린 게 공통점이다. 방아쇠를 당겨 지척에 있는 적을 해치는 게 아니라 적을 마주하지 않고 버튼 하나로 목표를 완수하는 것이다. 현대전에선 이를 ‘버튼 누르기 전쟁’(push-button war)이라고 부른다. 적진 멀리서 적을 타격할 수 있어 살상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는 게 특징이다.드론 기술까지 발달하면서 죄책감을 완화하는 ‘버튼 전쟁’이 확산하고 있다. 가성비 좋은 무기라는 인식 때문에 너나 할 것이 드론 개발에 열을 올린 영향도 크다. 전투기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하던 튀르키예와 이란 등이 드론을 만들면서 500달러(약 72만원) 정도면 손쉽게 군사용 드론을 구할 수 있다. 더 이상 2000만달러짜리 탱크나 300만달러가 넘는 미사일처럼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여기에 우크라이나는 영상 촬영용으로 쓰던 ‘1인칭 시점(FPV·first person view) 드론’을 대거 전장에 투입했다. 드론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보는 시점(1인칭 시점)으로 적을 포착해 재빨리 타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공격을 ‘굿 킬’이라고 여기는지 살상용 드론

    2024.12.19 17:53
  • [천자칼럼] 180년 전 부결된 美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1841년 4월 윌리엄 해리슨 미국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해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현직 대통령 사망이 처음인 데다 헌법에 대통령직 승계와 대통령 권한대행 관련 조항이 없어 혼란이 극심했다.당시 부통령이던 존 타일러는 권력서열 2위로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의회는 “다음 대선 때까지 제한적 권한대행 역할만 해야 한다”고 맞섰다. 타일러가 의회에서 통과된 관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곧바로 하원은 타일러를 몰아내는 탄핵안 표결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부결됐지만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전무후무한 탄핵안 추진이었다.미국에서 사라진 역사가 18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재현할지 모르겠다.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한 총리까지 탄핵 명단에 올려놓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이미 “한 총리도 내란 공범으로 탄핵 대상”이라며 선전포고했다.헌법상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국군통수권과 외교권, 공무원 임면권, 법률안 거부권 등을 갖는데 민주당은 특히 법률안 거부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김여사 특검법·양곡관리법·국회법이 가결된 상태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되면 한 총리가 일부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중 고건 총리도 사면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쓴 적이 있다.거부권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한 총리 탄핵안까지 가결되면 정부조직법에 따라 기획재정부·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

    2024.12.13 17:35
  • [천자칼럼] '앵커 베이비' 없애겠다는 트럼프

    미국엔 ‘앵커 베이비(anchor baby)’라는 말이 있다. 닻을 내려 배가 정박하듯 미국 태생 자녀가 부모의 닻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동으로 시민권을 얻는 자녀를 통해 미국에 쉽게 정착하려는 원정출산 관행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NBC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원정출산 문제를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원정출산을 근절하기 위해 관광비자 발급을 어렵게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도 나왔다.트럼프는 오래전부터 앵커 베이비를 비판해 왔다. 첫 대선에 출마한 2016년부터 줄곧 미국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시민권을 주는 이른바 ‘출생시민권’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제도”라고 날을 세웠다.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8년과 2019년엔 잇따라 출생시민권 제도를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말뿐이었다.출생시민권은 대통령 행정명령 하나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14조엔 미국에서 태어나면 부모의 시민권 여부와 관계없이 시민권을 보장받는다고 규정돼 있다. 남북전쟁 이후인 1868년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주기 위해 추가한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택할 수 있는 길은 개헌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 헌법을 개정하려면 연방 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고 50개 주 중 4분의 3 이상 주에서 승인받아야 한다.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기 행정부 때와 달리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 데다 공화당 우세 주도 늘어 난공불락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더 강경한 국경

    2024.12.11 17:28
  • [시사이슈 찬반토론]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합당한가

    여야가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내년 1월부터 가상화폐 투자수익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가 여당에 이어 야당까지 투자자들의 반대에 백기를 들었다. 초기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따라 가상자산 투자자들도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론이 컸다. 그러나 과세 체계가 제대로 갖춰질 때까지 유예가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 막판에 힘을 얻었다. 세수 부족 현상을 더 심화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면세가 유지된 금융투자소득과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찬성] 자산으로 인정 않으면서…세금부터 때리는 건 모순당초 암호화폐 과세는 2020년 12월 도입이 확정됐다. 이듬해 10월에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두 차례 유예돼 내년 1월부터 과세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총선 때 국민의힘이 과세 시점을 연기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놨고 더불어민주당도 혼선을 거듭하다 최근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정부안대로라면 연간 250만원 이상 가상자산 수익을 올리면 소득의 20%(지방세 포함 시 22%)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민주당은 가상자산 공제액을 250만원에서 금융투자소득세 공제액 수준인 5000만원으로 상향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하자고 주장하다가 결국 정부안대로 2027년으로 유예하는 쪽으로 기울었다.여야 모두 800만 명에 달하는 암호화폐 투자자의 반발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관련 규정이 정비되지 않은 가운데 세금부터 매기는 건 앞뒤가 바뀐 처사라고 비판해왔다. 법적으로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과세하는 건 모순이란 논리다. 암호화폐 자체가 자산으로 인정되

    2024.12.09 10:00
  • [천자칼럼] 3차 핵시대

    최초 핵폭탄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탄생했다. 연합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과 독일 나치 간 대결이었다. 양국 모두 핵 개발에 뒤지는 순간 패전할 것이란 두려움이 컸다.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미국이 1945년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13만 명이 투입된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서다.이번엔 옛 소련이 자극받았다. 미국에 스파이를 침투시킬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그 결과 미국 예상보다 빠른 1949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그러자 미국은 3년 뒤 원자폭탄보다 수십 배 강한 수소폭탄을 만들었고 이듬해 소련도 금세 따라잡았다. 이후 두 나라는 핵무기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다. 1980년 초 양국의 핵탄두 수는 각각 1만 개 이상으로 늘었다.양국은 치킨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 감축에 들어갔다. 1986년 양국 정상 간 합의로 핵미사일 수를 6000개로 줄이기로 했다. 양국 대결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사이 주변국이 핵 경쟁에 뛰어들었다. 영국, 프랑스 같은 서방국가 외에 중국 파키스탄 인도 북한 등이 핵 개발 대열에 합류했다. 양자 대결이 다자 대결로 바뀐 ‘2차 핵 경쟁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0여 년간 세계 핵무기는 7분의 1로 줄었지만 핵 보유국은 9개국으로 늘었다.이젠 핵무기와 핵무장국이 동시에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5 세계대전망>을 통해 이 같은 시기를 ‘3차 핵시대’라고 명명했다.중국이 미·러와 함께 3대 핵 강국 구도를 형성하고 북한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다. 핵보유국 문턱까지 온 이란에 맞서 사우디아라비아도 핵을 갖겠다고 벼르는 중이고, 우크

    2024.12.06 17:45
  • [천자칼럼] 미국의 51번째 주

    “지옥 같은 필리핀 정부를 버리고 미국이라는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1981년 필리핀 대선에 출마한 바르톨로메 카방방 연방당 후보의 출사표였다. 그는 필리핀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고속 성장할 수 있다는 청사진에 유권자들이 공감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필리핀 독립을 지지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대승이었다.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필리핀과 달리 푸에르토리코 국민은 미국에 거부감이 적다. 미국에 인접한 인구 320만 명의 섬나라여서 대미 의존도가 높은 영향이다. 1898년 스페인 식민지에서 미국령이 된 뒤 1917년 이 나라 국민들은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1952년엔 자치권까지 얻었지만 미국 선거에서 참정권은 갖지 못했다. 당연히 미국 정치권에서 뒷전이었다. 푸에르토리코는 1967년부터 선거 때마다 미국 성조기의 51번째 별이 되기 위한 국민투표를 병행했다. 매번 찬성 비율이 높았지만 미국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친민주당 성향이어서 공화당의 반감이 컸다.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찬성했지만 공화당의 반대에 막혔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측 찬조 연설자가 푸에르토리코를 “쓰레기 섬”이라고 부를 정도였다.트럼프가 캐나다에 대해선 정반대 발언을 했다. 지난달 말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에 플로리다 마러라고로 달려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향해서다. 트뤼도가 “고율 관세로 캐나다가 완전히 죽을 수 있다”고 하자 트럼프는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받아쳤다. 트럼프 취임일인 내년 1월까지 선물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협상용 메시지겠

    2024.12.04 17:36
  • [천자칼럼] '트럼프 송'의 역주행

    디스코는 본래 비주류 음악이었다. 1960년대 백인 남성 중심의 록 음악이 대세였던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외계층이 춤을 추면서 틀던 노래가 그 기원이다.197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지하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디스코 전성기가 시작됐고 그때 결성된 그룹 중 하나가 ‘빌리지 피플’이다. 1976년 프랑스 출신 프로듀서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멤버를 모집해 1978년 그 유명한 ‘YMCA’를 발표했다. ‘영 맨’(Young man)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겉으론 기독교청년회(YMCA)가 운영하는 쉼터를 소개하고 젊은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내용이다. 그러나 멤버 대부분이 동성애자여서 YMCA가 동성애자의 해방 공간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논란을 알지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2022년 한 방송에 출연해 “YMCA가 게이들의 애국가로 불리지만 YMCA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의적인 가사보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디스코 음악 특유의 흥겨움이 정치적 선동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YMCA가 나온 1970년대는 미국 중장년층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기인 동시에 뉴욕에서 부를 일군 트럼프 본인의 전성기와도 겹친다.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2020년 코로나19에서 회복한 뒤 나선 첫 유세 때부터 이 노래를 본인의 테마송으로 삼았다. 2020년 대선과 선거 패배 후 백악관을 떠날 때도 YMCA를 틀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선 샘 앤 데이브가 부른 ‘기다려, 가는 중이야’(Hold On, I’m Coming)를 선거 로고송으로 삼으려 했지만 노래 저작권자들이 반대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없는 YMCA를 다시 한번 &lsq

    2024.12.02 17:40
  • [천자칼럼] 날씨의 표변, 수목의 배신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에서 라일락을 생동감 넘치는 봄의 전령으로 표현했다. 동서고금의 시나 노래에서 라일락꽃 향기 하면 봄을 떠올렸다. ‘첫사랑’인 꽃말도 계절의 시작인 봄과 닮았다.봄의 계절어나 마찬가지인 라일락이 이제는 새롭게 정의돼야 할지 모르겠다. 라일락꽃이 봄뿐 아니라 가을에도 피고 있어서다. 수년 전부터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에 있는 라일락은 가을에도 개화하고 있다. 앞서 진달래와 철쭉은 10여 년 전부터 봄과 가을에 꽃망울을 터트렸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아그배나무(5월 개화)와 참빗살나무(5~6월)는 올해 처음 봄·가을에 두 번 개화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 종에선 제철 꽃이 다른 계절에도 피는 ‘불시(不時) 개화’뿐 아니라 동일한 나무에서 낙엽과 꽃, 열매, 새순이 동시에 나기도 했다.계절을 초월하는 기현상은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경기 용인의 한택식물원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관찰되는 등 전국 각지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10월 초 반짝 추위 이후 기온이 예년보다 올라가자 여름에 진 봄꽃이 겨울에 다시 개화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이상 고온은 올겨울까지 지속될 수 있다. 지난달까지 올해 최강 한파를 전망하던 기상청은 한 달 만에 따뜻한 겨울이 올 것이라고 급선회했다. 북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 주변에 고기압이 확장해 대륙 한파를 막아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겨울옷 매장과 스키장엔 악재고, 골프장과 관광지엔 희소식이다. 겨울 해외여행도 예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따뜻한 겨울은 언제든 바뀔 여지가 있다. 한

    2024.11.25 17:31
  • [천자칼럼] '바이오의 TSMC' 꿈꾸는 삼바

    제조를 외부에 맡기는 외주 생산은 1910년대 컨베이어벨트 방식을 도입한 포드가 본격 시작했다. 오늘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부르는 현대적 위탁생산의 시초다. 이후 OEM은 정보기술(IT), 의류, 신발 등에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OEM이 한층 진화한 건 1990년대다. 외주 업체들이 개발 역량까지 겸비하면서 제품 설계와 디자인까지 맡아 완성품을 납품한 때다. OEM과 구분해 제조자설계생산(ODM)으로 정의했다. 기술력과 디자인 능력을 갖춘 아시아 기업들이 ODM 전문업체로 자리 잡았다. 노스페이스를 생산하는 영원무역, 나이키 신발을 만드는 태광실업, 화장품 전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 국내 대표 ODM 업체들도 이 시기에 고속 성장했다.이 업체들은 업종이 달라도 모두 OEM·ODM 업체로 불렸지만 반도체업계는 달랐다. 반도체 생산 방식이 쇳물을 주형(거푸집)에 넣고 가공하는 주조 공정과 비슷해 거푸집을 뜻하는 ‘파운드리’란 용어를 썼다. 반도체 제조가 어떤 분야보다 복잡해 일반 위탁생산과 차별화한 의미를 담으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 설비 건설에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 일반적 OEM과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진입장벽이 높아 대만 TSMC와 삼성전자 외에 세계적 파운드리 업체로 자리 잡은 곳이 많지 않다.반도체 못지않게 위탁생산으로 크기 어려운 업종이 바이오다. 생산설비 마련에 수조원이 필요하고 사람 목숨을 다루는 만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해서다. 이런 특성을 반영해 바이오업계는 OEM과 ODM 대신 ‘의약품위탁생산’(CMO)과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이란 바이오만의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만의 리그여서 10여 년 전만 해도 스

    2024.11.21 17:32
  • [천자칼럼] 미국의 '안티워크' 경제

    지난해 4월 미국 조지아주의 지역 맥주인 ‘울트라 라이트 비어(Ultra Right Beer)’가 미국 전역에서 대박을 쳤다. 미국 내 부동의 1위 맥주 ‘버드 라이트’가 톡톡히 한몫 거들었다. 당시 버드 라이트가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를 인스타그램 모델로 쓰자 트랜스젠더에 거부감이 강한 중장년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확산했다. 이 틈을 ‘완전한 오른쪽 맥주’를 표방한 울트라 라이트 비어가 ‘100% 워크프리(woke-free)’라는 광고 문구로 파고들었다.워크(woke)는 ‘정치적 올바름’(PC)과 같은 뜻의 단어다. 영어 동사 깨어나다(wake)의 과거분사(woken)를 흑인들이 ‘워크(woke)’라고 발음한 것에서 유래했다. 초기엔 흑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깨어 있자는 취지로 썼다. 하지만 미국 내 PC주의가 도를 넘자 그런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말로 변질했고 최근엔 워크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끼리 경제권을 형성하자는 ‘안티워크 경제’(Anti-woke economy)라는 용어까지 나왔다.안티워크 진영은 좌파가 미국 기업을 장악했다고 보고 우파 색채의 대안 기업을 설립했다. 아마존에 대항하는 퍼블릭스퀘어, 유튜브를 넘어서겠다는 럼블, 히스패닉계 백설공주를 내세운 디즈니에 맞서 원작에 충실한 어린이 영화를 만들겠다는 벤트키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들은 모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며 자유와 가족, 애국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들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아직까지는 미래형이다. 퍼블릭스퀘어는 올 3분기까지 3690만달러(약 513억원)의 손실을 내며 직원 35%를 해고했고, 같은 기간 럼블의 손실도 2520

    2024.11.20 17:46
  • [천자칼럼] 병역 면제 나이 상향 '유감'

    한국이 해외 체류자의 병역 제도를 강화한 건 1990년대다. 세계화 열풍 속에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증하던 시기다. 이때부터 출국 후 귀국을 미루는 입영 대상자가 늘자 정부는 1999년 해외 체류자의 병역 면제 연령을 31세에서 36세로 높였다.3년 후 병역 관련 규정을 뒤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2002년 1월 “꼭 군대에 가겠다”던 가수 유승준 씨가 기습적으로 도미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다. ‘고의적 병역기피’라는 비판이 들끓자 이른바 ‘유승준 방지법’이 생겼다. 2004년 해외 영주권자의 병역 면제 혜택을 없앤 데 이어 이듬해엔 당시 국회의원이던 홍준표 대구시장 주도로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등을 개정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병역기피자의 국내 체류 자격을 박탈했다. 이어 2011년 홍 시장은 악의적 해외 거주자를 비롯한 병역기피자의 입영 면제 연령을 36세에서 38세로 올리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통과를 이끌었다.그럼에도 10년 넘게 해외 체류형 병역기피가 줄지 않자 다시 연령 상향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해외 체류자의 입영의무 면제 나이를 38세에서 43세로 올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병역 면제를 어렵게 하자는 취지지만 연령 상한이 능사는 아니다. 30세 이후 입대하면 정상적 군 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꾸 면제 연령을 늦춘다고 한들 병역기피자가 확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오히려 처벌 강화가 효율적이란 지적이 나온다.병무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 8월까지 해외 거주 사유로 입대를 거부한 병역 대상자가 1037명에 달했다. 이 중 86%가 해외 체류 이유로 기소중지(수사 중단)됐고 6%만 형사처벌

    2024.11.19 17:38
/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