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정부는 왜 매번 실패하는가
이제부터는 가파른 하산길만 남았다. 4년간 급하게 오르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잘못된 등반 루트도 발견하고 시행착오의 흔적도 숱하게 볼 것이다. 임기 중반까지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고공행진을 해온 문재인 정부로선 체감하는 추락속도가 더 빠를지도 모른다. 이미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은 ‘순장조’에서 탈출하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쓴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급함이다. 취임 초기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레임덕이 오기 전에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성급함이 더해져서 ‘정책 참사’가 발생한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취임 첫해 최저임금을 16.4%, 이듬해 10.9%를 올리며 실패는 예견됐다. 불과 3년 만에 최저임금이 32.8%나 뛰면 시장의 대응은 명확해진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에 전가하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고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을과 을’의 갈등구도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고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목표를 접었다.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에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올해 8720원에서 14.6%를 올려야 한다. 경제여건상 불가능한 수치다.

만약 ‘과속’하지 않고 한 자릿수 인상률을 5년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을 무리없이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연거푸 두 자릿수 인상률을 강행해 시장의 역풍을 받지 않았다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렇듯 정책이 시장의 수용범위를 넘어서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한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한때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꺼낸 ‘핀셋규제’가 대표적이다. 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기 직전인 2019년 10월 김 전 실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시장을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준비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핀셋 단위로 펴겠다”고 했다.

당시 김 전 실장이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었는지는 인터뷰 메모에 그대로 드러난다. “서울 아파트 단지의 가격 정보를 동(棟) 단위로 보고 있다. 조만간 행정전산망 통합으로 모든 거래 정보가 정부 손아귀에 들어온다. 장담컨대 자금출처 조사까지 더하면 시장을 잡을 수 있다. 모든 행정력을 동원할 것이다.”

지금 봐도 당황스러울 정도의 자신감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당시 그는 “모든 정책이 성공하더라도 부동산 시장 안정에 실패하면 모든 게 꽝”이라고 했다. 우려했던 바가 정확히 현실이 됐다. 불과 1년 반 전 얘기다.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명감까지 더해진 ‘정책 참사’다. 물론 지금은 당정 어디에서도 이런 식의 객기를 부리진 않는다.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저자인 존 스토셀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약속에 속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부 정책이 최선이라고 믿는 직관은 잘못된 것이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개입과 규제본능에 사로잡힌 정부의 존재 자체가 필연적으로 실패를 내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처럼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벌써 수많은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청년자금 1억원, 청년기본대출·기본주택, 참여소득, 국민기본자산제 등….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믿거나 말거나 식의 포퓰리즘 공약들이다.

달라지지 않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경제계는 착잡하다는 반응이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이 일군 국부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써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지쳤다”고 말했다. 이러다 ‘내로남불’에 이어 다음엔 ‘무임승차’ 정부가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또 하나의 반면교사를 갖게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