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라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
“담배 두 갑으로는 부족해요. 회의는 별로 하지도 않고 밤새 들락날락하면서 담배나 피울 텐데요.”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가기 전에 한 말이다. 위원장이 당일 심의 의결을 공언한 만큼 14일 새벽에는 최저임금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13일 오후부터 14일 새벽까지 ‘1박2일’로 진행될 예정인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를 버티려면 담배 세 갑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회의장에서는 흡연이 불가능하다. 휴식 시간에 피운다는 얘기였는데, 정회 시간이 얼마나 길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실제 13일 전원회의는 오후 3시에 시작해 14일 새벽 2시10분께 종료됐다. 겉으로만 보면 ‘11시간 마라톤 회의’였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회의는 시작하자마자 노사 대표가 발언한 직후 바로 정회했다. 한 시간여 뒤 속개된 회의는 6분 만에 다시 정회했다. 이후 정회와 속개가 계속 반복됐다. 새벽 2시 의결을 위한 마지막 회의가 다시 열리기까지 회의 시간은 길게 잡아도 4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달리다가 중간에 한두 시간씩 쉬는 마라톤은 없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는 올해도 이렇게 파행을 빚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먼저 뛰쳐나가고, 이어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소상공인 대표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럴 때마다 회의는 정회되고 한두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문제는 누구도 이런 회의 진행 방식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해야 새벽까지 치열하게 논의하다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웃지 못할 대목도 있다. 14일 새벽에 공개된 최저임금 인상률 잠정치는 13일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공익위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결론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노사 간 감정싸움을 부추기는 장시간의 회의가 불필요하게 이어지는 상황이 올해도 되풀이됐다.

정부도 이런 회의 방식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2018~2019년 최저임금이 2년 새 30% 가까이 오르고 이 과정에서 노사 간 대립과 잡음이 커지자 정부가 지난해 초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 방안을 추진했던 이유다. 전문가들이 관련 경제 지표와 산식을 토대로 적정 최저임금 인상률 구간을 정하면, 노사 대표가 짧은 기간 동안 협상해 인상률을 정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잠자면서 개편 논의는 유야무야됐고, 20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가 들어섰지만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도 개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사는 모두 결정 방식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에 다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