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코스닥벤처펀드 출시를 기념해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오른쪽 세번째) 등이 박수치고 있다.
2018년 4월 코스닥벤처펀드 출시를 기념해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오른쪽 세번째) 등이 박수치고 있다.

“시장을 자기들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언젠가 된통 고생할 겁니다.”

정부가 벤처‧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코스닥시장 활성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던 2018년 초 한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가 들려줬던 얘기가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 방침의 영향으로 코스닥시장이 930포인트를 돌파하는 등 잘 나가던 시점이었습니다.

하도 자신 있게 얘기해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 정부는 증권, 부동산 등 시장 전반에 대해 ‘규제하면 잡히고, 띄우면 뜬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다”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성공한 역사가 없다. 두고 보라”고 답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가 예측한 대로 문재인 정부가 시장 통제의 후폭풍 때문에 흔들리는 몇 가지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증권시장에서는 이 무렵 이 CEO가 우려했던 코스닥벤처펀드발(發) 중소‧벤처 상장사들의 자금경색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독려해 공‧사모 자산운용사들이 2018년 4월 일제히 출시한 코스닥벤처펀드는 코스닥시장을 띄워 중소‧벤처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관제(官製)펀드였습니다. 자산의 15%를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포함한 벤처기업 신규 발행주식에 투자해야합니다.

이 상품 출시의 영향으로 펀드에 담아야할 우량 CB BW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2018년 한 해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벤처기업들까지 잇따라 CB BW 발행에 나섰습니다. 시장이 과열되면서 국내 기업이 2018년(4조3479억원)과 지난해(5조3903억원) 발행한 주식 관련 사채 규모는 10조원에 달했습니다.

[여기는 논설실] '시장의 역습'에 휘청거리는 文정부
문제는 코스닥벤처펀드 출시 2년이 다가오면서 이 무렵 발행됐던 CB BW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조기상환 요구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증시가 급락했기 때문에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CB나 BW를 주식으로 전환하기보다, 현금으로 돌려받는 게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스닥기업들은 연초부터 2018년 발행한 CB BW 조기상환용 자금 확보 목적으로 CB BW 재발행이나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급락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국내‧외 경기둔화로 경영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자금경색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코스닥기업들이 최악의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도해 내놓은 코스닥벤처펀드 투자 기업들이니 믿을 만하겠지’라는 생각에 펀드가 담은 기업들의 주식 등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수익률 악화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오만이 역풍을 불러일으킨 가장 대표적인 곳은 아무래도 부동산 시장일 것입니다. 시가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등 초강력 규제를 담은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도 ‘풍선효과’가 이어지자 올 들어 정부는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지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19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 규제에서 벗어난 인천, 경기도 안산 지역 등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집값 하락을 기대했던 서울 강남 등 핵심 지역도 일부 인기 단지도 급매물 소화된 뒤 조용히 신고가 신기록을 이어가는 등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조달청이 코로나19發 ‘마스크 대란’을 해결한다고 일부 중소 마스크 업체에 제조원가를 밑도는 가격에 납품할 것을 요구한 것도 시장에 대한 오만, 혹은 무지(無知)의 결과입니다. 그 부작용으로 결국 해당 업체는 생산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파문이 커지자 조달청이 재협상에 나서 결국 생산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만…

만약 그대로 생산이 중단되고, 이 기업을 따르는 다른 회사들이 늘어났다면, 마스크 한 장이 아까운 시기에 국민들이 받아야했을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 지는 누구나 상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격에 대한 통제가 공급부족을 야기하고,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시장 작동의 원리를 정부는 몰랐던 것일까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시장의 역습은 하나하나가 국민들 가슴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그 결과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에 어떤 형태로건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세를 점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공식화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시장 규제로 인한 후폭풍과 무관치는 않을 것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