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호들갑 입법'하는 국회
“다시는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폭염 속에 어린이집 원생이 통학차량 안에서 고온으로 질식사한 사고가 발생하자 국회의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관련 입법을 쏟아내면서 내놓은 발언이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0일 영유아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어린이통학버스에 의무 설치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로 불리는 이 장치는 운전자가 버스 맨 뒷좌석까지 가서 특수 부착된 버튼을 눌러야 시동이 꺼지도록 한 장치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영유아 차량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의원들은 사고가 터지자 이 장치를 당장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의원들도 질세라 유사 입법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의원들의 뒷북 입법을 지켜보는 여론은 따갑기만 하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년 전인 2016년 8월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에도 같은 해 7월 광주에서 4세 어린이가 유치원버스에 방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는 당시 곧바로 법안을 처리했을까? 이후로도 비슷한 사건이 여섯 건이나 더 발생했지만 국회는 이 법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소관 상임위원회였던 행정안전위는 그해 11월 “자동차 관리 법령을 다루는 국토교통위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떠넘겼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시스템 탑재 논의는 건너뛰고 운전자가 어린이 하차 의무에 부주의할 경우 벌금 20만원을 부과하는 땜질 처방만 하고 넘어갔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 법안이 예산 확보 없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이 장치를 설치하는 데 대당 25만~30만원이 든다”며 “정부 지원 없이 법으로만 강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시동을 끈 뒤 뒷자석에 탑승자가 남아 있을 경우 운전자에게 스마트폰 등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올해 출시한 차량에 도입했다. 국회가 재원 대책 없이 법안 처리를 미루는 사이 민간기업이 능동적으로 대처한 것이다. 생산성 제로의 국회가 배워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