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중FTA, 비관세장벽부터 제거해야
중국에서 돈 벌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중국 정부가 수입품에 불리한 비관세 장벽을 교묘하게 쌓아가고 있어서다. 이 같은 추세는 ‘산업구조 고도화’라는 중국 정부의 전략이 ‘경제성장률 둔화’란 암초를 만나 더욱 심해질 조짐이다.

최근 불거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보조금 문제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한국 기업들의 주력 품목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보조금 대상 품목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NCM 배터리 공장을 중국에 설립한 LG화학이나 삼성SDI로서는 중국 정부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렇다고 항의를 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 정부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비관세 장벽이 없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수출입 통제, 각종 인허가, 기술 표준, 위생, 통관에서 정부조달, 지식재산권, 보조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비관세 장벽은 그 규모나 높이 면에서 만리장성을 연상케 한다. 거대한 만리장성이 세계 무역과 투자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모양새다.

그 중에서도 중국 정부의 인증이나 허가를 통한 무역제한 조치는 특히 심각하다. 완구류나 자동차 부품 등 22종의 품목은 CCC(중국강제성인증제도) 마크를 부착해야 한다. 하지만 CCC 인증 발급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심사기간이 길어 수출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규제가 강화된 화장품은 유행 주기가 짧아 출시시점이 중요한데 복잡한 인허가 절차로 인해 수출을 포기해버린 중소기업이 많다.

금융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최저자본금 2억위안, 업력 30년 이상 등 중국에서의 보험사 설립요건은 엄격하다. 한국의 한 생명보험사는 이 요건을 모두 충족했는데도 법인설립 신청서를 제출하고 최종 인가를 받는 데까지 13개월이 걸렸다. 법에는 6개월 내에 인가여부를 통보하게 돼 있어 3~4개월 소요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지점 설치도 만만찮다. 중국 4대 국유 상업은행의 지점은 무려 2만~5만개에 달하지만 중국 진출 한국 은행의 지점수는 고작 몇 개에서 20개 정도다. 예금 75% 이내의 대출 규정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데다 조달비용까지 현지 은행보다 높아 소매금융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시장구조다.

한국 정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정부 간 비관세조치 협의기구를 설치하고 투자기업 애로사항 해소 담당부서를 지정하는 등 중국 내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중국 내 비관세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첫째 한·중 FTA 협상을 통해 마련된 정부 간 각종 채널을 실질적으로 가동해 비관세 장벽을 낮춰 가야 한다. 서로 합의된 원칙을 더 구체화해 협상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앞으로 전개될 서비스 후속 협상을 포함해 중국 비관세 장벽의 해소 문제는 한국 정부의 규제 완화라는 해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부처에 따라서는 규제 권한을 오히려 놓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범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셋째 중국의 비관세 장벽 실태에 관한 정보를 지역별, 품목별, 주제별로 공유할 수 있는 산·관·학 정보공유 시스템의 개발이 절실하다. 넷째 중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피해를 보는 나라들과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공동 제소하는 등 사건별 국제공조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정부조달이나 서비스 등 복수국 간 협정 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적극 유도해 국제규범의 채택을 앞당기게 하는 전략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허윤 <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hury@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