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계가 또다시 ‘노동조합 리스크’에 내몰리고 있다. 완성차업체 노조마다 온갖 이유를 내세우며 투쟁 깃발을 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생산절벽’에 직면한 자동차업계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지 4월 3일자 A1, 5면 참조
'생산절벽' 눈앞인데…'노조 리스크' 덮친 車업계
파업권 확보 나선 한국GM

4일 업계에 따르면 한동안 잠잠하던 한국GM 노조가 또 파업에 나설 채비에 들어갔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 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다. 중노위는 앞으로 10일간 노사 간 조정 절차를 진행한다.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조는 곧바로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노조는 올초 분리한 연구개발(R&D) 법인(GM테크니컬센터코리아)에 적용하는 사측의 새 단체협약 요구안에 반발하고 있다. 신설 법인으로 옮긴 직원 3000여 명에게도 기존 단협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내놓은 신설 법인 단협안은 차별적 성과급 도입 및 징계 범위 확대, 정리해고 일방 통보, 노조 활동에 대한 사전 계획서 제출 등을 담고 있다”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측은 기존 생산직 중심으로 짠 단협을 R&D 및 사무직 위주인 신설 법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6개월간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다. 파업 횟수만 52차례(210시간), 이에 따른 매출 손실만 2352억원에 달한다. 회사는 이미 만신창이 상태다. 르노삼성은 올 1분기 3만8752대의 차량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0.2% 감소했다. 프랑스 르노 본사와 동맹을 맺은 일본 닛산이 르노삼성 노동조합의 장기 파업을 이유로 올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위탁생산 물량을 40%가량 줄이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오는 9월 로그 수탁생산 계약이 끝나면 공장 가동률은 50%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조 동의 없으면 증산도 못해

현대·기아자동차 노조도 이달부터 투쟁 수위를 높여나갈 태세다. 향후 정년퇴직자 대체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워달라는 요구를 앞세우고 있다. 회사 측은 추가 정규직 채용은커녕 기존 인력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두 회사는 2025년까지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차 생산량이 늘어나 생산직 인력 수요가 20%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두 회사는 되레 노조 눈치만 보고 있다. 단협 규정에 따라 신차를 생산하거나 공장별로 생산 물량을 조정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구조 탓이다. 현대차가 대형 SUV 팰리세이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한 달 넘게 노조를 설득한 게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12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팰리세이드가 예상보다 인기를 끌자 사측은 노조에 증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증산 방법 등에 노조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간만 흘렀다. 지난 2월 말 협상을 시작한 노사는 최근에야 증산에 합의했다. 노사는 이달부터 팰리세이드 월 생산량을 6240대에서 8640대로 38.5% 늘리기로 했다.

자동차업계에선 ‘노조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생산절벽’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미 지난 1분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95만4908대)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랜 판매 부진에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 노조 리스크 등이 맞물린 결과다. 파업이 반복될 경우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온 연 400만 대 생산체제가 무너질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