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GM 본사가 4912억원을 투입,GM대우의 실권주를 포함한 신주를 전량 인수키로 하면서 2대주주인 산업은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GM대우를 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만큼 산은도 성의를 보이라"는 무언(無言)의 시위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산은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GM대우는 이번 유상증자로 유동성 위기를 한 고비 넘기게 됐지만,GM본사나 산은의 추가 지원이 없을 경우 독자생존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산은과 GM,고도의 수싸움

관심의 초점은 GM이 왜 유상증자 금액 4912억원을 전액 부담하기로 했는지에 모아진다. 산은 내부에서는 GM이 기존 지분율(50.9% · 2500억원)만큼만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GM은 미국 연방정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회사라 해외 계열사에 투자를 하려면 정부와의 협의가 필수적"이라며 "나중에 미 의회로부터 비난을 살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은 예상밖"이라고 말했다.

GM대우 회생을 위한 산은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산은 측 해석이다. 이번 결정으로 GM은 여론 다툼에서 기선을 잡게 됐다. GM의 해외사업부문을 총괄하는 닉 라일리 사장은 "이번 결정은 GM의 글로벌 사업 영역에서 GM대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며 "GM대우는 '뉴 GM'의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GM대우가 대규모 선물환 손실로 유동성 위기를 겪자 GM은 산은에 1조9000억원의 장기 대출을 요청한 상태다. 산은은 그동안 'GM 본사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대출을 거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GM이 실권주를 포함한 신주 전량을 인수키로 해 산은의 입장이 어떻게 변할지 관심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산은이 GM대우의 장기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GM 측에 요구해 온 조건에는 변화가 없다"며 "GM과의 협상 방향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GM '단독 증자 카드' 배경 뭔가

이번 단독 증자로 GM은 GM대우의 지분을 70% 넘게 확보하게 됐다. 산은의 지분은 28%에서 17%로 하락,GM대우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GM과 산은이 체결한 주주계약서에 따르면 GM대우의 영업 양도와 임대 등 주요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주주 75%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 상법이 정한 특별결의 요건인 '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보다 엄격한 조건을 주주 계약서에 반영했다. 스즈키 등 나머지 주주가 GM 우호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GM은 특별결의시 75% 요건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어차피 GM이 지분율만큼 2500억원만 투자했더라도 산은의 지분율은 21%로 떨어지게 돼 특별결의 저지선이 무너지게 돼 있었다"며 "GM의 증자 결정 당시 예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GM의 '마이 웨이(my way)'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가 궁금해졌다. 지금까진 GM대우가 상하이GM 등 중국에 밀려 역할이 축소될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자동차 시장만 놓고 보면 생산 단가가 높은 GM대우가 상하이GM 등에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전기차 등 그린카 분야에선 한국의 부품 기술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이 부분과 관련해 산은과 GM 간 '빅 딜'이 성사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GM이 5000억원가량을 투자키로 하면서 GM대우는 이달 말로 만기가 찾아오는 9435억원가량의 대출금을 상환할 여력이 생겼다. 하지만 GM대우의 유동성 문제가 100% 해결된 것은 아니다. 수조원가량의 선물환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은은 채권단과 협의해 매달 만기가 돌아오는 선물환 상환 유예를 결의했지만,언제든 GM 압박 카드로 꺼낼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박동휘/이심기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