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 애칭 '석호필'로 유명한 미국 배우 웬트워스 밀러(35)가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홀을 메운 150여 명의 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제일모직 마케팅팀은 더 짜릿한 기쁨에 휩싸였다. 마니아층이 있을 뿐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을 모델로 캐스팅해 놓고 노심초사 불꽃이 일기를 기다리던 끝에 '대박'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

제일모직이 '석호필'을 낙점한 것은 작년 11월. 이 때만 해도 그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 인기 드라마의 잘생긴 남자 주인공일 뿐이었다. 이은주 제일모직 마케팅팀 차장은 "젊은 감각과 세련된 이미지를 추구하는 빈폴 진을 표현할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밀러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사실 '석호필'의 첫 기자회견은 지난 2월10로 잡혀있었다. "언론에 홍보 자료를 배포했는데 마케팅팀에서 홍보에 애를 먹는다고 하더군요. 반응이 거의 없다고요."(이은주 차장) 그러다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밀러 측에서 촬영 스케줄로 인해 팬 미팅 날짜를 한 달 남짓 늦춰달라고 요청한 것.

이 차장은 "그러는 동안 인터넷 포털에선 마니아들이 중심이 돼 '석호필'이란 애칭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며 "우리도 석호필의 엘리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프린스턴대 영문학과 출신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알리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귀띔했다. 결과는 대성공. 23일 '석호필'의 기자회견이 열리자 공중파 TV는 물론 연예인 얘기에 인색한 일간지들까지 비중있게 그의 성공 스토리를 대서특필했다.

이 차장이 바라본 '석호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스튜디오 촬영 때 팬들이 밖에서 7~8시간이나 기다렸어요. 어지간한 외국 배우들은 위험하다며 잘 나가지 않거든요. 그런데 '석호필'은 촬영 도중 밖에 나가서 인사하고 고마움을 표시했죠."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