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권석철 사장의 꿈은 개그맨이었다. 평소에 남 웃기기를 좋아하는 그는 실제로 지난 94년 SBS 개그맨 공채시험까지 치르기도 했다.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낙방. 하지만 지금도 그를 만나본 사람이면 "유쾌했다"라는 말로 첫인상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 개그맨이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법한 혼자만의 "꿈"이라면 컴퓨터 바이러스는 풀어야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권 사장과 바이러스의 인연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하공업전문대학에 재학중이던 89년 가을,그는 학술제에 출품할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한창이었다. 전자계산학과 친구들과 함께 며칠밤을 지새우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 프로그램을 출품조차 하지 못했다. 겨우 개발해 놓은 프로그램이 "브레인"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돼 완전히 쓸모없이 변해버린 때문이었다. 이후 권 사장은 "바이러스"라는 얘기만 들려도 곧장 달려가 확인해야 할 정도의 지독한 바이러스 매니아가 됐다. 당시 부친이 근무하던 한국전력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것도 한전 자료실에 바이러스 관련 자료가 많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년 졸업후 몇년이 흐를때까지도 바이러스 연구는 단순한 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개그맨에 대한 꿈이 그의 마음 속에는 더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개그맨 공채시험을 치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95년부터 한국전산원과 한국정보보호센터에서 바이러스 방지기술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것은 오늘의 백신 전문가 권석철을 있게 한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95년경 그는 당시 백신 전문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안철수 사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때 "정부기관에도 바이러스 연구가가 필요하다"고 조언한 안 사장의 말이 그를 정부기관에 들어가도록 결심하게 한 이유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현재 국내 백신 시장을 양분하는 경쟁자의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권 사장은 정보보호센터에서 바이러스 연구에 힘쓰는 한편으로 PC통신 천리안의 바이러스 동호회 운영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통신망에 공개용 백신을 올리는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그는 점차 바이러스 분야의 "숨은 고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전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어느날,그는 이제 외산 제품과 경쟁해도 손색없는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98년 3월 그는 3명의 동호회원들과 함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전문회사를 설립했다. "하늘 아래 우리가 있다"는 뜻으로 회사 이름을 하우리로 정했다. 당시 그가 가진 것은 자본금 5천만원이 전부였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