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5시만 되면 김동수 회장이 향하는 곳이 있다. 국선도 도장. 그 곳에서 김 회장은 양복을 벗고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으면서 '회장'이라는 직함도 함께 벗어던진다. 이때부터는 대신 '사범'이라는 꼬리표가 그에게 붙는다. 13년 전 건강을 위해 시작한 국선도가 이제는 '부업'이 된 셈이다. 일을 잊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단전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다보면 어느새 삶의 시름이 날아가버린다. 5년전 건강이 매우 악화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의 얼굴 어느 구석에서도 병마의 흔적을 볼 수 없다. "다 국선도 덕분"이라고 김 회장은 말한다. 조그마한 체구의 김 회장은 겉보기와는 달리 운동과 연이 깊다. 검도는 공인 6단이다. 김 회장이 검도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일'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잇기 위해 청주로 내려왔을 때다. 공장이래 봐야 비가 새는 조그만 판잣집이었고 종업원도 겨우 30명이었다. 영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고민은 툭하면 찾아와 일을 방해하는 동네 불량배였다. 대학에서 조용히 공부만 하던 청년이 견뎌내기엔 힘겨웠다. 하루는 무작정 청주경찰서에 딸려 있던 무도장을 찾아갔다. 그 길로 검도를 배웠다. 사업을 하는데 불량배의 협박 하나 못이기면 안된다며 이를 악물고 몸이 부서져라 연습했다. 심지어 무리한 연습 때문에 소변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 피나는 훈련 끝에 김 회장은 검도를 시작한지 1년만에 충북 검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이후 검도와 김 회장의 인연은 계속돼 지난 1978년 대한검도회 회장, 이듬해엔 세계검도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