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체제 종식과 함께 세계인들의 주된 지향점은 "이념구현"에서 "경제번영"으로 바뀌었다.

쉽게 말해 "돈벌이"가 인간행동의 최대 결정변수가 됐다.

그리고 그 가장 주요 원리로서 "세계화"와 "신경제"가 신봉됐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 양대 사회 운영 원리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화와 신경제는 결국 번영이 아니라 총체적 경제위기,즉 세계대공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구심과 배반감이 커지고 있다.

과연 세계화와 신경제에 대한 제3국민들의 정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 떠나는 민심 : 세계화와 신경제에 대한 민심 이반은 가장 결정적으로 미국의 오늘날 현실에서 야기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미국의 정국 혼미양상은 세계화의 핵심인 통일된 국제규범, 즉 계약주의 또는 법치주의의 구현 가능성을 지극히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제 자신 국가지배구조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가 어찌 기업지배구조를 비롯한 범세계적 규범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의심이다.

또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미국 경제의 활력,특히 신경제 분야 기업들의 줄 도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신경제로 인식돼 오던 미국 경제를,신경제 아닌 저유가에 편승한 거품경제로 비쳐지게 하고 있다.

제3세계인들은 또 최근 네덜란드의 헤이그 회의 진행상황이나 보조금을 둘러싼 유럽과 미국간의 무역분쟁을 보며 유럽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흡수제 또는 배출권 거래제 활용을 크게 제약하면서 유럽 전체를 "하나의 나라"로 간주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방침에 대해, 이는 미국에 해를 입히려는 간교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미국측 비난은 타당성이 없지 않게 들린다.

여기다 유럽연합은 자국 기업들에게 매년 미국의 5.5배가 넘는 엄청난 직접보조금을 지급하면서도 미국의 역외기업에 대한 세금혜택,즉 간접보조금에 대해선 무역보복을 외친다는 미국측 힐난 역시 일리 있게 들린다.

OECD에 따르면 작년 유럽연합이 자국 기업들에게 지급한 직접보조금 액수는 무려 2천1백70억달러에 달한다.

한국 연간 GDP의 약 절반이다.

그러니 조선업계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을 주장하며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을 외치는 유럽에 대해 한국이 내심 승복할 리 없다.

이밖에도 세계적 서방회사들의 부도덕한 상거래 행각 역시 제3국민들의 서방 선진국에 대한 신뢰를 반감시키고 있다.

비근한 예로 미국계 금융회사,시티은행은 일찍이 전 나이지리아 독재자 사니아바차의 아들들 자금을 유치하려 했고,전 멕시코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의 동생 라울의 돈을 끌어들이려 했으며,러시아인이나 동구인들의 돈을 세탁해 주었다.

프랑스의 세계적 할인점인 까르푸는 한국에서 탈세와 불법 외화자금 도피 의혹을 받고 있다.

영국인이 운영하는 리젠트 금융그룹은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인해 투명경영, 공정경쟁, 균형 잡힌 기업지배구조 등의 구호가 무색해진다.

<> 음모로 치부되는 세계화 : 일본 교토대학 모토야마 요시히코 교수는 세계화를"시장주의 이름을 빌린 미국의 경제패권주의" 음모로 파악한다.

종이조각인 달러화를 내주며 세계 자원을 다 끌어쓰는 미국은 이로 인한 달러가치 폭락과 초고인플레이션을 예방하고,교역국의 청구권을 희석시키고자 갖은 꾀를 다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의 금태환을 부정한 1971년 닉슨쇼크며, 1970년대초 이래 거듭되는 오일쇼크,그리고 개도국의 외환쇼크를 그는 모두 이런 맥락으로 풀이한다.

미국은 이 모든 것을 영어의 세계화와 세계적 미디어의 장악으로 합리화하며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연장하면 결국 개도국 경제난은 범세계적 달러라이제이션이 달성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 전망 : 사회 부패도의 완화,특권 이익집단의 분쇄, 개인의 자유 확대, 경제적 후생 증대, 경쟁증대를 통한 기회의 균등화 등 세계화가 개도국 국민들에게 안겨 준 혜택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도국 사람들의 마음은 차츰 긍정에서 부정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 하다.

이에 인류는 이제 필립 오거가 "신사적 자본주의의 죽음"에서 지적했듯,원칙도 신의도 없는 이기주의자가 되고 있다.

물론 이대로는 경제적 번영도 평화도 없다.

그러나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 시대의 리더, 미국조차 분열과 리더십 부재상태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천년은 레스터 서로우 교수 말처럼 "제2의 중세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