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최경환 전문위원 ]

지난 97년 한국환란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던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 교수.

그는 한국정부의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대체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구조조정 속도가 느리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퇴출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인내심을 갖고 개방화시대에 맞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하고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그를 지난 3일 만났다.

-금년 4월초 한국의 위기극복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한경 4월1일자 참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그렇다.

97년 경제위기는 단기자금의 과도한 차입에 따른 유동성 위기였다.

단기외채 비중을 줄이고 외환보유고를 확충함으로써 유동성문제는 해결됐다.

실물부문에서도 많은 부실을 정리했다.

세계에서 부실문제를 한국만큼 빨리 정리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 많은데.

"증시투자자는 항상 변덕스럽다.

물론 구조조정을 하루아침에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일시에 강제 퇴출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 아직도 개방체제에 맞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방경제에 맞는 금융시스템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과거 한국기업은 정부보증을 통해 5백%가 넘는 부채비율을 유지하면서 초고속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개방경제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시장의 평가를 토대로 주식 채권 등 직접금융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험 연기금 등 장기자금 시장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장기자금 시장 육성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과도기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과도기적으로는 은행이 장기자금 공급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은행들은 BIS 비율에 얽매여 장기자금 대출을 기피하고 있다.

BIS 비율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된다.

은행의 영업형태에 따라 융통성을 줘야 한다.

규칙을 위한 규칙이어서는 안된다"

-개방체제 하에서 주식투자자금 등 단기자금 유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어떻게 규제하나.

"증시투자자금을 규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단기자금을 과도하게 차입해 장기로 운영하는 것은 규제해야 한다"

-한국이 97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것으로 보는가.

"단기외채나 외국인 증시투자자금 규모로 볼 때 9백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한국이 제2의 외환위기를 겪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개방체제에 맞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해 외부충격에 대비하고 부실을 상시적으로 정리해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정부의 2단계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나.

"한국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고 본다.

부실기업을 일괄적으로 청산하지 않고 청산 법정관리 매각합병 등으로 분리 처리하기로 한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구조조정에서 중요한 것은 일률적으로 같은 메스를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체질이 허약한 금융기관들을 한꺼번에 문 닫게 하는 것은 기업의 연쇄부도 등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모든 기업을 살리려 하는 것도 무모하다.

부실기업을 무조건 빨리 많이 퇴출시킨다고 해서 구조조정이 잘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한국의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특히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처방식에 대한 견해는.

"재벌개혁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아직도 지배구조나 재무 건전성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하지만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재벌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재벌을 해체하면 한국경제의 역동성은 사라질 것이다"

-세계가 미국경제의 연착륙 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경제에는 몇가지 불안 요소가 있다.

행정부 교체에 따른 정책의 불확실성, 주식시장의 조정 가능성, 달러화 가치하락이 그것이다.

고유가도 미국경제의 덜미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미 경제는 연간 3~4% 정도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연착륙하리라 본다.

하지만 미 주가는 6개월 전부터 어느정도 조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거품이 남아 있다.

큰 폭의 추가하락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