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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의 충격은 잠복했던 사회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눈에 띄지 않던 미세한 균열들은 눈 깜짝할 새 수면 위로 도드라졌다. 벌이가 끊긴 자영업자, 일터가 사라진 일용직, 고립이 심화한 노인 같은 사회문제부터 취약한 글로벌 공급망, 허점투성이 방역·의료 시스템, 브레이크 없이 폭증하는 국가부채까지 각국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문제에 허둥대기만 했다. 이럴 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영국 중앙은행의 부총재를 역임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에 맞섰던 인물이라면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흔들리는 사회 안정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안을 모색한 책이다. 생명력을 다한 옛 ‘사회계약’을 대체할 ‘공존을 위한 공감대’를 마련할 것을 역설한다. 저자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 IMF 부총재 등을 지냈고 현재 명문 런던정경대 총장을 맡고 있는 경제학자 미노슈 샤피크다.

[책마을] 팬데믹 그후…무너진 사회를 일으키는 건 '손에 손잡고'
언젠가부터 세계 각국에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가 급격히 분출되기 시작했다. 잇따른 경제 위기와 급격한 고령화는 기존에 당연시되던 사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약한 사회, 계층 이동이 막힌 곳일수록 불만이 컸다. 자연스레 사회를 지탱하던 기둥들은 권위를 잃고 흔들렸다. 공동체는 와해 위기로 몰렸다. 때마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동하던 국제질서도 힘을 잃었다. 빈자리는 포퓰리즘이 파고들었다.

코로나19는 이 같은 위기를 가속했다. 전염병에서 노년층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 세대보다 소득이 적을 것으로 점쳐지는 청년층이 경제·사회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했다. 그런데도 위기 대응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부채를 갚는 것은 모두 청년층의 몫이 됐다.

쌓여만 가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선 새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게 시급하지만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눈앞의 혼란, 고루한 고정관념은 위기를 극복할 손쉬운 ‘정답’을 취하는 것마저 방해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사회 참여다. 여성이 가사노동에 소비하는 시간이 적은 나라, 남성이 가사를 많이 분담할수록 사회의 생산성은 눈에 띄게 개선됐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을 가로막는 것은 단순히 법과 제도의 미비가 아니었다. 성별과 인종, 장애, 성적 취향 등을 기준 삼아 사람을 차별하는 전통과 문화의 굴레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주저하는 데는 한국과 일본, 영국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분야의 개선이 다른 분야의 퇴보로 이어지는 ‘제로섬’ 사례도 속출했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은 현대사회의 분명한 성과지만 부양해야 하는 노인 수가 증가했다는 그늘 역시 짙었다. 1992년 독일이 아동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출산휴가 기간을 18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린 결과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 수의 대폭 감소였다. 이는 다시 어머니의 소득 감소로 이어졌고,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저하하는 원인이 됐다.

‘적절한’ 대책을 시행하는 것은 언제나 지난한 과제였다. 고용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규제는 비정규 노동시장의 급성장을 낳았다. 저소득 업종에 비정규직이 몰린 탓에 빈부격차는 확대됐다. 고용 안정의 보호막은 소수의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적용됐고,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의 해고로 이어졌다.

탁상공론은 반복됐다. 근로자를 대학이나 직업교육기관의 강의실에 보내는 직업 재교육은 고용효과가 전혀 없었다. 소득 재분배를 위해선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틈만 나면 부자에게 과세해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이전하는 ‘로빈후드식’ 해결책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더는 사회계약의 변화를 미루는 게 불가능해졌다. 기술의 진보, 인구구조 변화, 환경 변화, 종교·문화적 변동은 새로운 틀에 반영돼야만 했다. 저자는 모두에게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최대한 투자하며, 사회가 짊어질 위험을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을 것을 제시한다. 그것이 더 많은 시민을 포용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청사진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야심 차고 긴박한 주제와 대조적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왠지 밋밋하고,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여전히 특이한 약, 강한 처방을 남용하는 게 아니라 기초 체력을 튼실히 하고, 면역력을 키우는 의사를 바람직한 의료인이라 믿는다면, 저자의 해법을 진정성 있는 처방전으로 여기고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