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듣고 말하는 AI, 온라인 지배하는 새 플랫폼 될 것"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로봇 ‘볼리’를 공개했다. 볼리는 “같이 걸을래?”라는 말에 반응해 사람을 따라다니는 ‘동반자 로봇’이다. 아마존은 이탈리아 고급 자동차인 람보르기니에 탑재돼 운전을 돕는 음성 비서 ‘알렉사’를 선보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명령에 따르는 만능 AI 비서 자비스를 보며 꿈 같은 일이라고 감탄했다. 스스로 생각해 말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자비스의 모습은 이제 현실이 됐다. 많은 기업이 AI를 이용해 냉장고, 세탁기, 거울 같은 사물에 생각할 수 있는 지능과 대화 능력을 부여했다.

이런 AI 시스템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음성이 그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대다수 AI는 인간의 음성을 듣고 인간과 의사소통을 이어간다. 과학기술 전문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블라호스가 쓴 《당신이 알고 싶은 음성인식 AI의 미래》는 음성인식 AI가 어떻게 우리 삶과 비즈니스를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인간과 사물의 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선도적 AI 기업의 프로그래머와 만나고 개발 회의에 직접 참여해 이들이 왜 음성인식 AI에 사활을 걸었는지 답을 찾아냈다. 음성이 물건을 팔고, 광고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수익화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온라인 검색의 절반이 음성으로 이뤄지고, 3분의 1이 화면 없이 수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저자는 “구글이 찾아주는 100만 개 링크가 음성 검색을 통해 찾아낸 정확한 답변 하나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며 “검색 광고에 매출을 의존하는 기존 온라인 비즈니스의 판이 뒤집히는 등 음성인식 AI는 온라인 세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과연 AI가 불멸의 존재로서 인간을 죽음에서 해방시켜주는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저자는 질병으로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방대한 기억과 목소리를 데이터로 변환한 뒤 대화형 AI에 주입해 ‘대드봇(Dadbot)’이란 AI 로봇을 만들어냈다. 그는 “대드봇과 대화하면서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AI는 이처럼 관계, 프라이버시, 죽음을 재정의할 뿐 아니라 치료, 건강관리, 문화콘텐츠,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AI의 핵심은 대화 능력이며 인간 수준으로 대화를 완성하는 게 4차 산업혁명의 종착지”라고 주장했다.

책은 음성 AI에 대한 예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대신 정보를 걸러내고 판단하는 컴퓨터를 운영하는 기업이 많은 사람의 생각, 언어, 행동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던진다.

그는 “AI가 제안한 한 가지 답을 우리가 그대로 수용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독립성을 잃게 된다”며 “우리 스스로 지적으로 수동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