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옷 골라주는 '지그재그'… "한류 타고 일본 女心 공략"
물리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개발만 하던 남자가 연 거래액 3500억원의 패션 쇼핑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쇼핑 필수 앱으로 인기를 누리는 ‘지그재그’ 얘기다.

2015년 6월 나온 이 앱은 서울 동대문을 중심으로 온라인 쇼핑몰 3000여 곳의 상품 580만 종의 정보를 모아놨다. 마음에 드는 쇼핑몰을 ‘즐겨찾기’하듯 골라두면 최신 상품을 편리하게 보여주고, 인공지능(AI)이 개인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 추천까지 해준다. 누적 다운로드 1200만 건을 넘겼고 이용자의 90% 이상이 10~20대 여성이다.

지그재그 운영업체 크로키닷컴을 창업한 서정훈 대표(사진)는 “옷을 만드는 일이라면 따라갈 수 없겠지만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본질로 접근한다면 나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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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가 처음부터 패션 앱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2012년 설립된 크로키닷컴은 영어사전 앱, 스포츠 커뮤니티 앱 등을 내놓으며 꾸준히 기회를 모색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공작은 없었다. 창업 3년차엔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하면서 서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윤상민 최고기술책임자(CTO) 둘만 남을 정도로 쪼그라들기도 했다. “한국은 시시하니 해외를 제패할 앱을 개발하자”던 꿈은 무색해지고, 불안이 찾아왔다.

2015년 2월 ‘이번에도 잘 안 되면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기획한 게 지그재그였다. 서 대표는 “돈을 벌려면 의식주(衣食住) 중 하나로 아이템을 잡아야 하는데 이미 배달이나 부동산 앱은 너무 커진 상태였다”며 “패션 앱엔 강력한 1위가 없고, 소비자들의 불편도 많으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가 생각한 패션 쇼핑의 문제점은 모바일 결제가 불편하고, 포털에서 원하는 쇼핑몰과 상품을 찾기까지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제휴를 위해 쇼핑몰을 찾아다녔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결국 300개 쇼핑몰의 상품정보를 크롤링(컴퓨터로 긁어오기)해 한데 모으기로 했다. “이용료나 수수료를 떼지 않으니 그냥 긁어와도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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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뒤 지그재그를 출시하고 마케팅을 시작했다. 입소문 효과가 빠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만 집중 공략했다. 김정훈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통상 1000만 다운로드를 넘긴 앱은 TV 광고 등에 거액을 쏟아붓는 사례가 많지만 우린 자원을 아끼기 위해 철저히 ‘타깃 마케팅’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옷을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다는 호평이 퍼지면서 이용자 수가 쭉쭉 늘었다. 지그재그 이용자들은 주문 1회당 4만원어치 안팎을 구입한다. 신생 입점업체 중에는 지그재그 의존도가 90%에 이르는 곳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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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이 전무하던 2016~2017년 벤처캐피털(VC)에서 총 100억원을 투자받았다. 투자에 참여한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수석심사역은 “재방문율이 일반 e커머스보다 월등히 높았고 입점업체 인터뷰 결과 ‘지그재그를 통해 매출이 늘었다’는 곳이 많았다”며 “양쪽 고객을 만족시키는 게 확실하다면,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그재그가 수익을 내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입점업체가 1300개에 이른 2016년 10%의 수수료를 받기로 하자 절반가량이 이탈했다. 서 대표는 “‘우리나라 모든 쇼핑몰이 여기 있다’는 콘셉트로 이용자를 모았는데 일부가 사라지니 이용자 불만이 심각했다”며 “남은 입점업체에서 수억원의 현금이 들어왔지만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2주 만에 취소했다”고 말했다.

한동안 가입자 기반을 더 늘리는 데 주력해온 지그재그는 지난해 11월 새로운 수익모델을 시도했다. 개인 맞춤형 추천을 도입하면서 유료 광고를 연계했다. 서 대표는 “개인별 방문·구매이력을 분석해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보여줬기 때문에 광고라는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개인화 광고가 안착하면서 지난해까지 제로(0)에 가깝던 매출은 올해 보수적으로 잡아도 100억원을 무난히 넘길 전망이다. 서 대표는 “투자를 더 받지 않아도 자립해 굴러갈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했다.

지그재그는 올해 말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서 대표는 “일본 젊은 층에서 K패션 열풍이 심상치 않고 신체 사이즈, 사계절이 있는 환경 등 모든 면에서 해볼 만한 시장”이라며 “한국에서 기반을 다진 만큼 이제는 해외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