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해적판' 몸살 앓는 대한민국

#1.영화 마니아인 직장인 A씨(32)는 요즘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 인터넷 웹하드 사이트나 P2P(파일 공유) 프로그램 등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얼마든지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도 공짜거나 편당 100~200원에 불과하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콘텐츠라는 생각은 잊은 지 오래다.

#2.대학생 B군(24)은 친구 집에서 과제를 하려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 '한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곧바로 메신저에 접속,한 친구에게서 어렵지 않게 '한글 2007' 프로그램을 구했다. B군은 자신의 USB에 있는 불법 '포토샵' 프로그램까지 친구 컴퓨터에 선심 쓰듯 깔아주고 왔다.

대한민국이 '불법 다운로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에 따르면 불법 영상물 단속의 경우 2005년 12만건 정도였던 것이 지난해엔 259만건으로 폭증했다. 해적판 영상물 시장이 불과 3년 만에 21배 이상으로 커진 것이다.

◆10분의 1로 줄어든 DVD 대여점

영화의 주요 재판매처였던 DVD 시장은 그야말로 고사 상태에 이르렀다. 한창 때 전국 4만여개까지 늘어났던 DVD 대여점은 현재 4000개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남아 있는 곳도 대부분 도서 대여를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음반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제아무리 인기 있는 대중가수라도 이젠 수백만 장의 빅히트 음반을 낼 수가 없다. 인기 여성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모르는 젊은 세대는 거의 없지만 앨범은 7만여장이 팔려나갔을 뿐이다.

불법 복제는 게임 산업에도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닌텐도 DS 게임기는 국내서만 250만대 이상 판매됐다. 하지만 닌텐도 DS를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뉴 수퍼마리오' 게임팩은 고작 40만개만 팔렸다.

닌텐도 관계자는 "복제를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해도 'R4칩'과 같은 불법 구동기기를 사용해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며 "최근 R4칩 판매업자가 법원에서 실형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품사용 조기교육 절실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자들 스스로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지욱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상근부회장은 "깨끗하고 윤리적인 인터넷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초 · 중 · 고등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가 1013명을 상대로 설문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절반가량(48%)이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이나 친구한테서 얻는다고 답했다.

지식 재산을 확실하게 보호,소프트웨어 산업을 제대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은 고용 창출 측면에서도 절실하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매출 10억원당 8.9명으로 전기 · 전자기기(1.5명)의 6배 이상이다.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윤선희 한양대 교수는 "불법 다운로드 문제만 해결해도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 지식경제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부처 간 업무 공조를 강화하고 산업 육성을 위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